[맷피터] 이른 아침
🕶x🕷/소설
2026. 1. 18. 19:32
뉴욕의 아침은 이른 시간에 시작한다. 보통의 직장인은 해가 뜬 뒤에야 움직이는 편이었지만, 그 이전에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맷은 그들의 아침을 소리로 알아차리곤 했다. 아침 일찍 가게를 여는 꽃 가게의 주인, 과일을 진열하는 과일 가게 직원, 그리고 일찍이 세탁물을 정리하는 세탁소 부인까지 여러 사람이 존재했는데, 맷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이른 시간부터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공기를 가르는 일종의 액체, 그리고 단숨에 끈적하게 바뀌는 그것은 밧줄과 비슷했지만 그보다도 더 튼튼한 물질이었다. 그것은 버튼을 누르는 소리와 함께 발사되어 건물의 외벽이나 도로, 때로는 가로등 따위에 붙여졌다. 거미줄 용액. 피터가 그렇게 부르고 있는 화학물질은 생각보다 큰 소음을 내는 편이었다. 물론 보통의 사람이라면 모르겠으나, 맷에게는 그것이 꽤 큰 소리로 느껴졌다. 거기에 화학 물질의 냄새도 함께 남기는 거미줄은 무엇보다 분명하게 피터의 아침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늘 맷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맷은 날카로운 거미줄 소리를 자명종 삼아서 잠에 빠져 있었던 정신을 조금씩 현실로 되돌렸다. 꿈속에서 화려했던 세상은 현실에 돌아오자, 다시 어둡고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소리와 감각으로 만들어진 세상은 뒤죽박죽 흩어진 정보들의 모임과도 같다. 정돈된 집안과 달리 맷이 어찌하지 못하는 소음과 냄새들은, 바깥에서 조금씩 스며들어와 맷의 공간을 제멋대로 흩트리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자고 싶어. 완전히 깨어난 정신과 달리 여러 감각으로 지친 몸은 부드러운 실크 이불에 여전히 몸을 뉘고 싶어 한다. 약간의 망설임.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음, 거기에 더해진 사이렌 소리. 맷은 헬스 키친에서 무언가 일어났음을 짐작했다. 커다란 사건은 아닐 테고 단순한 소매치기 정도의 소동일 것이다. 가게에서 사과 한두 개를 훔치는 그 정도의 별것 아닌 작은 일들. 맷을 이불 속에서 꺼내기엔 부족한 사건들이다. 포근한 시트 속에 파묻힌 채, 맷은 한참을 고민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이렌 소리가 청각을 찌르고, 귓속을 파고든다. 꽉 닫아둔 창문 사이로는 밤 동안 쌓인 도시의 냄새가 스멀스멀 새어 들어온다. 맷은 애써 밖의 이야기를 모르는 체하며 눈을 꾹 감았다.
조금만 더 있다가 출근 준비를 하자.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역시나 몸은 그럴 생각이 없다.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도시를 누볐던 피곤이 아직 씻기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맷은 애써 변명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홀로 누운 침대 위를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주 잠깐의 고독은 나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면 더 엉망진창이 된 도시가 맷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 만남을 좀 더 미루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가까워진 날카로운 소리. 건물 외벽에 툭 내려앉은 발소리가 가볍게 벽을 울린다. 타박거리는 작은 소리는 점점 맷의 집 창문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은 벽을 걷지 못한다. 거미줄을 손목에서 발사하지도 않는다. 맷은 가까워지는 소리에 집중하면서도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 그리고 강한 심장의 울림. 맷은 이제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벽을 걸어 다가오는 경쾌한 발은 이내 맷의 집 창문에서 멈춰 섰다. 약간의 망설임과 긴장. 심장이 조금 빠르게 요동친다.
“맷, 자요?”
혼잣말과 같은 아주 작은 속삭임. 닫아둔 창문 앞에서 피터가 혼잣말처럼 말을 건넸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한숨과도 같은 말은 맷에게는 분명하고 명확한 대화로 전달되었다. 우리 이야기할래요? 피터가 건네는 작은 시그널. 아침부터 시끄러운 거미줄을 치며, 사과 몇 개를 훔치는 도둑을 잡아둔 뒤에 찾아온 피터는 창문 앞에서 망설이며 중얼대고 있었다. 약간의 고민, 그리고 더 큰 피곤함. 맷은 여전히 침대에 몸을 뉜 채 고민한다. 눈을 감은 채로 생각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얼른 일어나서 피터를 위해 창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피터가 다시 달아날지도 몰라. 머리는 그렇게 외치지만 맷의 몸뚱이는 그것을 들을 생각도 없는 듯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괜히 열어서, 받는 것이 거절의 단어나 무언가 좋지 않은 말들이라면 어쩌지.
맷의 망설임을 만드는 것은 그런 걱정과 고민들이다. 언제나 맷 머독의 바닥에 고여 있던 감정과 생각들은 이런 순간에 맷을 늪에 가둔다. 선택의 순간. 맷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 결과가 참혹하다면, 그리고 누구도 남지 않게 된다면, 그것이 제가 택한 것은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싶어서였다. 그냥 모두가 떠나갔을 뿐이야. 맷은 언제나 그렇게 핑계를 댄다. 고백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면 무언가 달라질까.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는 스킨십에 가까운 행동이었다고 말한다면 넘어갈 수 있을까. 맷은 고민한다.
피터의 심장 소리가 쿵쿵대며 울리고, 손에 잡힐 듯 선명해진다. 이보다도 더 빨랐던, 며칠 전, 피터의 소리는 쿵쾅거리며 맷의 손바닥에 닿아 있었다. 약간의 충동, 그리고 반쯤은 의도적인 입맞춤. 그것은 생각보다도 더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농담을 하며 밝게 웃는 피터의 목소리가 통통 튀어 올라 맷의 귓가에 닿고, 경쾌한 발소리가 아슬아슬하게 울려 퍼졌다. 해가 진 도시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낮 동안은 숨겨왔던 것들이 드러난다. 도시의 퀴퀴한 냄새와 소음. 맷은 헬스 키친을 사랑하는 동시에, 사랑하지 못할 것임을 그 순간에 깨닫곤 했다. 모든 것을 다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지. 맷은 그렇게 속으로 변명하며 피터의 웃음을 따라 걸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친구. 피터가 붙인 이름표는 이 관계를 쉽게 만든다. 맷은 그 이름표를 변명 삼아 피터의 옆에 서 있었다. 별것 아닌 이유를 만들고, 별 것 아닌 일로 만나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모자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맷의 욕심이 슬그머니 튀어나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맷은 잠깐 망설였다. 어떤 단어의 조합을 꺼내야 피터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이 불분명했다. 피터는 제멋대로 구는, 여전히 마음이 어리숙한 상대였고, 맷은 삶이 엉망진창인 사람이었다. 서로가 준비되지 않았음은 확실해서 이 감정을 꺼내는 게 나은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피터가 있으면 웃음이 난다. 도시의 소음과 악취에서도 무던하게 웃으며 그것을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희망을 안게 되었다. 모난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굳이 바꾸려고 분노하지 않더라도, 그저 그것까지도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희망이 조금씩 생겨난다. 도시가 반짝거린다는 피터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맷은 그저 그 말 위에 제 입술을 얹었다. 두근대는 심장은 터질 듯이 울렸고, 맷은 찬 바람을 맞아 차가워진 입술을 가볍게 이로 물었다가 부드럽게 감쌌다. 어색하게 굳어버린 피터는 그대로 멈춰 서 있었고, 충동적으로 입술을 붙였던 맷은 온기가 생긴 입술을 떼어내고 작은 숨을 내뱉었다. 좋아한다고 말해야 해. 머리로는 분명한데, 맷의 몸은 그것을 듣지 않는다. 혀끝으로 만들어내야 할 단어는 나오지 않고, 그저 피터의 눈이 있을 법한 방향에 고개를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쿵쿵 울리는 피터의 심장과 긴장으로 고민하는 맷의 손끝. 달아나는 게 특기인 두 사람은 그 순간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냥 그러고 다시 안전한 거리감으로 돌아가 도시에 관해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린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잖아요. 피터의 목소리가 도시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여전히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맷은 망설임으로 멈춰 있다. 그것은 창밖의 피터도 똑같았다. 누구도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대로 한 쪽이 다시 모른 척하며 다가온다면 다시 친구라는 이름표로 돌아갈 것이다. 맷은 그걸 알았다. 그리고 피터도 알고 있을 거라 믿었다.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는 망설임으로 가득하고, 벽에 붙어 있는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달아날까. 피터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붙잡을 용기도 나지 않는 맷은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맷, 자요…? 매티?”
창문이 위로 올라가고 그 사이로 피터가 들어온다. 바깥의 소음을 껴안고 들어온 피터에게서는 도시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창문을 다시 닫아도 이미 들어온 냄새는 막을 수 없다. 비어 있는 거실을 살피는 발소리는 조심스럽지만, 평소의 성격답게 소리를 숨기지는 못한다. 크고 시끄러운 발소리는 맷의 집안을 가득 채운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어 마시는 피터. 두근대는 심장과 달리 피터의 행동은 전과 같았다. 친구라는 걸 확인받으려고 온 걸까. 아니면 어떤 도움이 필요한 걸까. 맷은 침대에 누운 채로 고민한다. 그리고 한참 우유를 들고 서성이던 피터가 우유를 소파 앞에 있는 탁자에 둔다. 만진 것을 제자리에 두는 법이 없는 거미 한 마리. 맷은 터덜 웃음을 터뜨린다. 창문 앞에서 고민한 것치고는 참으로 편안한 움직임이었다.
이런저런 별명을 부르며 다시 침실 앞에서 고민에 빠진다. 바닥을 툭툭 치며 고민하는 피터의 망설임이 재밌어서 맷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그것을 듣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피터는 마스크를 바닥에 버려두고, 문손잡이를 쥔다. 잠깐 들어갈게요.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없는 투로 피터가 말한다. 천천히 열리는 문,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는 피터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화들짝 놀라 문을 닫을 듯했다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가, 용기가 났는지 냉큼 침실 안으로 들어온 피터는 슈트 차림으로 침실에 바깥의 냄새를 전하고 있었다. 거기엔 거미줄 용액 냄새도 있어서, 맷은 그 익숙한 향기에 짜증보다는 친숙함을 먼저 느낀다. 피터구나. 발소리도 심장 소리도, 그리고 이런저런 냄새도 모두 피터 파커를 감각으로 만들어낸다. 정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피터 파커라는 청년의 형태. 맷은 그 위에 피터는 농담을 잘한다는 주관적 서술까지 얹는다.
“맷—, 우리 이야기 좀 해요.”
피터의 조르는 목소리. 평소라면 일어났을 맷은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침대에 몸을 맡기고 있다. 매앳—. 말끝을 길게 늘이는 목소리는 다시 평소의 피터다. 부정적인 거절의 마음은 담겨 있지 않은 듯한 그런 경쾌한 울림에 맷의 입꼬리가 다시금 올라갔다. 입가에 우유 냄새를 뭍힌 피터는 한참을 불러도 맷이 대답이 없자, 침대 위로 엉거주춤 올라와 이불을 손에 쥐었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요. 피터가 중얼대며 이불을 당긴다. 아침 공기에 서늘해진 피터의 몸이 맷의 맨몸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한 탓인지 피터의 몸은 평소보다 차가웠다. 이불을 당겨 맷을 깨우려 애쓰는 피터를, 맷은 손을 뻗어 끌어당겼다. 우왓. 깜짝 놀란 피터가 앞으로 무너지고 맷의 품에 코를 박는다. 스판덱스 슈트의 감촉이 익숙하다. 맷은 슬그머니 입술을 끌어당겨 웃었다가 피터를 안은 팔에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일단 자고 이야기하자, 피터.”
“지금 아침인데요.”
“아직 졸려. 너도 그런 것 같고.”
피터의 위로 부드러운 이불을 당겨 덮어주며 맷이 말했다. 이미 해가 다 뜬 시간. 바깥은 따뜻한 햇볕에 조금씩 달궈지고, 뉴욕의 사람들은 아침을 준비한다. 졸리지 않다며 중얼거리던 피터는 맷의 온기에 물들어서 하품을 길게 하고, 고민하다가 눈을 감는다. 두근대는 피터의 심장 소리는 아까의 망설임은 담겨 있지 않고 오직 편안함만 남아 있었다. 맷, 좋아해요. 잠에 물든 피터의 혀끝이 단어를 엉성하게 만들어낸다. 맷은 그 혀끝 대신에 코 위로 입술을 얹었다. 응, 나도 그래. 별것 아닌 대화가 오가고, 방안에는 작은 숨소리만 남았다. 모두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맷과 피터는 침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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