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위장결혼 - 22

🕶x🕷/소설

2025. 9. 14. 15:52


홉고블린의 공장이 폭파된 후, 데일리 뷰글 1면을 장식한 벤 유릭의 기사에는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이 그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했다. 헬스키친을 꾸준히 괴롭히던 것들이 결국엔 일상까지 위협하였고,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망치기 시작했다.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이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이라 설명하는 기사는 벤 유릭이 오래도록 관심을 두고 있던 다양한 지역의 문제들도 함께 담고 있었다. 작은 협박으로 범죄에 가담했다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청소년도 그중 하나였다. 기사에서는 헬스키친의 마약 문제가 거의 해결된 것처럼 쓰였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있었다.

보석상을 노리는 강도 문제.

그중 일부는 맷이 FBI와 한 거래 덕분에, 경찰의 외면에도 재판까지 잘 흘러갈 수 있었다. 거기서 나온 증언으로 넬슨 앤 머독 변호사들의 클라이언트도 그 죄가 많이 덜어졌다. 경찰에게 협박당하여 강도질하는 동안 망을 본 청소년. 경찰과 엮여버린 탓에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종결되어 버렸으나, 아이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니, 포기는 만족한 모양이었다. 뉴욕의 골목에서 작은 죄 하나 없는 무고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작은 죄로 협박을 당하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맷은 남아 있는 강도 일당을 잡아들일 생각을 했다. 경찰관에서 범죄자가 된 두 사람 말고도 더 많은 이들이 엮여 있다는 것이 맷의 예상이었고, 엿듣기와 탐정 놀이는 데어데블의 특기였다.

“벌써 해가 뜨네요.”

스파이더맨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피터의 눈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았나 보다. 공기의 온도나 습도, 피부에 닿는 햇볕의 감각으로 해가 뜨고 짐을 알아차리는 맷은 피터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미줄로 거꾸로 매달린 탓에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피터의 움직임이 재밌었다.

“오늘은 여기까지겠네.”

“그래도 꽤 잡았네요. 하나둘셋…, 음, 아무튼 한 손 이상은 잡아넣은 거 같아요!”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보던 피터가 이내 손을 접었다. 거미줄로 모두 묶어두는 것은 스파이더맨이 했지만, 하나씩 세어보지는 않았던 터라 정확한 숫자에는 확신이 없었다. 

“정확히 아홉이야.”

맷이 담담하게 지적을 해왔다.

“비슷하죠, 뭐.”

아무튼 괜찮은 성과라며 피터가 즐겁게 웃었다. 하룻밤에 꽤 많이 잡은 편이긴 하지. 밤 동안 소문이 모일만한 곳들을 모두 돌아본 보람이 있는 결과였다. ‘이름 없는 술집’을 시작으로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은 보석상 강도들을 추적했다. 범죄자들이 자주 모이는 불법 술집은 맷과 피터가 정보가 필요할 때 자주 들리곤 하는 곳이었다. 술집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고, 그 과정에 악당을 때려주는 과정도 있었으나 괜찮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보석을 강매한 이들과 그것이 가짜인 줄도 모르고, 주인에게 돈을 받아 훔친 이들이 엮인 범죄의 거미줄은 헬스키친 아래에 꼼꼼하게 깔린 게 분명했다. 맷과 피터는 밤 동안 사라진 보석을 찾기 위해 애썼고, 가짜 다이아몬드와 진짜 보석이 담긴 자루를 부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홉 명의 범죄자를 거미줄로 감았으니, 피터는 이것을 꽤 성공적인 밤놀이로 보는 모양이었다. 피터를 따라 맷도 슬쩍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 정도면 수호자들이라 불릴 만하겠는걸.”

데어데블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피터가 맷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발견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는 얼굴을 모두 가리고 있어서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스파이더맨이 오해를 받거나 위협적인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는 공포를 일으킨다. 하지만 데어데블에게는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맷은 얄팍한 천 아래로 두근두근 뛰는 피터의 심장과 신이 나서 힘이 잔뜩 들어간 피터의 입매를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인정받은 스파이더맨은 평소보다도 더 텐션이 높았다.

지옥의 수호자들. 거창한 이름이 붙은 기사는 데일리 뷰글의 1면과 온라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내용은 언제나처럼 길거리 자경단원들이 마약 공장을 습격하여 헬스키친에 퍼지고 있던 마약을 뿌리 뽑았다는 이야기였는데, 스토리가 꽤 영웅적이고 웅장했다. 기업에서 만드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마약이라는 생소한 이야기도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했으며, 불길 속에서 서 있는 데어데블의 모습이나 스파이더맨과 데어데블이 홉고블린을 때려주는 사진이 끝내주게 잘 나온 덕분이었다. 맷은 사진은 볼 수 없었으므로 기사가 나온 뒤에 포기의 입에서 감탄을 듣고, 퇴근 후에는 신이 난 피터에게 기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쿵쾅거리며 흥분으로 가득 찬 피터의 심장 소리와 날아갈 듯 즐거운 목소리, 그리고 신문을 들고 천장을 걸어 다니는 경쾌한 발소리가 맷의 기분도 붕 띄워주었다. 벤 유릭이 쓴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의 기사는 피터의 즐거운 농담거리였다.

“헬스키친에게 인정받은 느낌인데요. 가끔 경찰들이 총을 겨누는 거 빼고요.”

“…그건 확실히 해결했는데. 수배령은 내려갔어.”

“거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익숙해요.”

피터가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히 말했다. 방화범이라는 오해도, 아이를 납치했다는 누명도 맷 머독 변호사가 해결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불탄 집의 주인은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성이며, 그 여성과 연인이자 동시에 진짜 강도범인 경찰관의 신원까지 재판을 통해 밝힐 필요가 있었으나 맷은 그 과정을 피고인이던 아이의 재판을 통해 빠르게 해냈다. 그럼에도 스파이더맨에게 총을 겨누는 경찰관은 여전히 있다. 피터는 누명을 쓰기 전에도 그랬기에 이미 그런 상황이 익숙해서 그저 웃으며 넘겼는데, 맷은 여전히 걱정이 드는 모양이었다.

조심해, 피터. 맷은 피터의 등에 손을 올렸다. 얇은 스판덱스 슈트 아래로 강한 탄성을 가진 근육이 꿈틀거리고, 또 그 아래로 운동선수처럼 크고 분명한 소리를 지닌 심장이 울리고 있었다. 이대로 같이 집에 돌아가서 피터를 침대에 강제로 눕혀주고 출근을 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피터의 강한 심장 소리는 이대로 얌전히 집에 들어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피곤으로 무거워진 피터의 눈꺼풀은 완전히 감기기엔 여전히 힘이 남아 있었다. 지치도록 움직이다가 집에 들어가겠지. 맷은 피터의 하루가 쉽게 예상되었다. 맷 머독은 변호사 일을 하러 가야 했으니 그 하루를 지적할 수 없었다.

“같이 아침 먹을래요?”

괜찮은 다이너 식당을 알아요. 거미줄로 거꾸로 붙은 피터가 하늘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맷의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같이 아침이라도 먹으면 좋을 것 같다. 함께 지내는 게 꽤 익숙해진 피터는 맷이 평소에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 야근을 하거나,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으나 변호사 맷 머독은 피터에 대해 일정하게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맷이 출근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식사하고 가기엔 충분한 시간인 것 같아서 피터는 제 머릿속에서 핫케이크가 맛있던 다이너 식당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피터의 심장이 두근두근 울렸다. 그 심장 소리가 재밌어서 작게 웃은 맷은 거꾸로 서 있는 피터의 머리를 가볍게 감싸고 입가를 찾아 입술을 붙였다. 얇은 마스크 천 사이로 닿는 입술의 감촉은 또 다르다. 맷과의 키스가 익숙해진 피터도 마스크 위로 하는 키스는 어색한지 멈칫했다. 맷은 마스크로 가려진 피터의 입술과 코끝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맷이 피터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다가 떨어지고, 피터는 잠시 멍하니 멀어지는 데어데블의 마스크를 쳐다보았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보는 데어데블은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네가 소개하는 식당은 늘 별로더라, 피터.”

“스파이디 투어는 불만접수는 받지 않아요, 변호사님!”

피터가 거미줄을 놓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번에도 믿어볼까. 그 사이에 먼저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윙을 시작한 맷은 서둘러 웹슈터를 발사하고, 웹스윙을 하는 피터의 몸짓을 감지하며 피터가 향하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웹슈터에서 풍기는 화학물질 냄새와 피터의 몸에서 나는 라임 향기는 맷의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했다. 해가 완전히 떠올라 뉴욕을 밝히기 전에,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은 코스튬을 입은 자경단원도 신경 쓰지 않는 식당으로 향했다. 함께 지내는 것이 익숙해진 두 사람의 일상 중 하나였다.

 


 

맷과 포기가 가장 애쓰던 클라이언트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변호사 사무실에는 언제나 사건·사고가 쏟아졌다. 변호사를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든 열려 있는 넬슨 앤 머독 변호사 사무실은 일거리가 넘치도록 많았다. 스파이더맨과 마주 앉아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 맷은 서둘러서 사무실로 왔다. 아슬아슬하긴 했으나 지각은 면했다. 혀에 남은 커피의 끔찍한 탄 맛은 피터가 먹던 설탕이 가득한 핫케이크 시럽으로 눌렀다. 데어데블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원두를 심각하게 태워버린 커피의 맛은 핫케이크의 달콤함으로 잠재워지고,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남았다.

맷은 슈트를 입은 채로 옥상을 통해 사무실로 내려왔다. 사람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맷에게 간단한 일이다. 익숙하게 사무실로 들어온 맷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셔츠의 단추를 잠갔다. 익숙한 발걸음의 주인은 맷이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이었다.

“…또 그러고 온 거야, 맷?”

익숙하게 맷의 개인 사무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포기가 어이없다는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포기는 요 며칠간 맷이 슈트를 입은 채로 출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포기의 시선이 셔츠 안쪽의 슈트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맷은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단추를 잠그고, 넥타이를 맸다. 그동안에도 포기는 다소 걱정스러운 듯 맷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의 일주일간 맷은 새벽까지 데어데블 활동을 하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맷 머독은 평소에도 집착적으로 자경단 활동에 임했으므로, 그 사실 자체는 포기가 놀랄 것도 없었으나 문제는 맷이 책임지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맷의 데어데블 활동이 주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있다면 바로 포기 넬슨이다. 함께 사무실을 창업한 뒤에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맷 머독의 이중생활을 알게 된 포기는, 그 이후로도 주변을 엉망으로 만드는 맷의 비밀활동을 지켜봐온 사람이었다. 맷 머독의 엉망인 연애사는 결국 데어데블 활동 때문에 벌어진 것이나 다름 없다. 거기에 발을 들인 ‘피터 파커’를 알고 있는 포기는 여전히 피터와 연애중인 것으로 보이는 제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휴먼 토치와 몸을 붙이고 있던 피터에게 상처 받아서 맷이 헤어질 줄 알았으나, 맷은 여전히 피터를 제 집에 두고 함께하는 모양이다. 맷을 오래도록 알아왔으나 이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포기는 그저 맷의 자경단원 활동으로 아직 어린 청년인 피터가 다치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응, 아직 살펴볼 곳이 꽤 남았거든.”

“피터는?”

“…아마 아침산책 중일 걸.”

정장 재킷까지 챙겨입고, 색안경을 쓰자 완벽한 변호사의 모습이 된 맷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자꾸만 피터를 걱정하는 포기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맷은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피터가 피터 머독이 되었으며, 그는 스파이더맨이다. 이 사실을 친우에게 밝힐 수 없는 매튜는 아까까지 함께 식사했던 피터를 떠올리며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터랑 잘 지내고 있어. 맷 머독의 연애사를 너무 잘 알고 있는 포기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피터가 여전히 휴먼 토치와 바람을 피웠다고 오해하고 있는 듯한 포기에게 맷은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빼놓고는, 그 오해를 풀 수 없음을 알았다. 결국 말을 아끼는 것이 답이었다.

맷이 할 일을 책상 위에 꺼내두고 일을 시작하자, 그것을 노려보던 포기도 한숨을 푹 쉬다가 제 방으로 돌아갔다. 맷은 손가락으로 서류를 살피며 변호사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손끝으로 종이를 더듬으면 잉크의 감촉이 느껴진다. 그 감촉에 모든 신경을 쏟으면 어떤 글자가 적혀 있는지 알 수 있었으나, 점자를 읽는 것보다 수고롭고 피곤한 일이었다. 새벽까지 깨어 있던 탓에 평소보다 명료하지 못한 감각을 피터와 마주 앉아 마셨던 커피를 떠올리며 강제로 깨우며, 맷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스틱과의 훈련으로 보통 사람보다 잠이 많이 필요 없다는 게 다행이다. 한 번 더 동네를 둘러본 뒤에 집에 들어가 침대에서 잠에 빠질 피터를 상상하며 맷이 생각했다. 여전히 불규칙한 삶을 살고 있는 피터는 맷이 슈트 차림으로 사무실 출근을 하는 동안, 새벽까지 함께 강도범 찾기를 했다. 피터를 떼어두고 홀로 다니는 방법도 있었으나 굳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고, 새벽은 길었으므로, 맷은 피터와 함께 밤을 가로질렀다. 홀로 활동하는 것을 즐기는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이, 자주 새벽에 함께 활동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악당들이 긴장한다는 것은 좋은 징조였다.

 


 

새벽에 거미줄로 묶어둔 강도가 제대로 체포되었는가 확인해야겠지.

한참 동안 책상에 앉아 일에 집중하던 맷은 휴대전화를 꺼내어 전화를 걸어볼지 생각하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고 셔츠를 벗고 데어데블 차림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이런 정보에 누구보다 능통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기자일 것이다. 와이어를 건물에 걸어 빠르게 도시를 가로질렀다. 맷 머독의 오랜 정보통이자 협력자인 벤 유릭은 비록 데일리 뷰글 소속 기자였지만, 맷은 그가 누구보다 선한 의지를 지닌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포기처럼 벤 유릭도, 맷 머독이 데어데블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 중 하나였다.

“벌써 그걸로 기사를 준비 중이야.”

데일리 뷰글 옥상에 착지한 맷은 기다리고 있던 벤 유릭과 마주했다. 데어데블이 도착하기 전부터 담배를 입에 물었는지 유릭의 발밑에는 타버린 꽁초 몇 개비가 놓여 있었고, 바람을 따라 담뱃재가 공기 중으로 흩날렸다. 데어데블은 망설임 없이 벤 유릭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아 버렸다.

“기사로 내기엔 아직 이야기가 부족해요, 벤. 들쑤실 곳이 아직 많습니다.”

맷은 불이 붙은 담배를 땅에 버리고, 신발로 불을 껐다. 경찰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했지만, 기사로 낼 정도로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새벽 동안 잡아야 할 관계자가 많이 남아 있기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낫다는 게 맷의 생각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새로운 담배를 꺼내려던 유릭은 이내 그것마저 맷에게 빼앗겨버리고 텅 빈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터덜 웃어 보였다.

“그건 조나에게 말해야지. 사진을 보더니 흥분해서 기사를 쏟아낼 생각이야.”

“…사진. 피터군요.”

굳었던 데어데블의 입매가 가볍게 호선을 그리며 풀어졌다. 벌써 사진을 팔아버린 피터의 행동이 꽤나 기자답기도 하다.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재밌어진 데어데블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제 발 아래로 감각을 옮겼다.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심장 소리와 근육을 지닌 피터는 아침 산책을 하는 대신에, 데일리 뷰글로 출근한 모양이었다. 당당하게 사진의 가격을 부르는 피터의 목소리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벽을 뚫고, 맷의 귓가에 닿았다. 함께 다니는 동안 카메라를 몇 번씩 꺼내더니 꽤 괜찮은 사진을 건진 모양이다. 가능하면 조용히 일을 처리할까, 생각했던 맷은 달라진 전개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 유릭의 기사 내용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언론사의 압박을 이길 수 있는 기관은 많지 않다. 피터와 상의했다는 벤 유릭의 기사는 아직 남아 있을 가짜 보석을 조심하라는, 그리고 그것의 책임은 정부 기관에 있다는 논지로 이루어진 글이었다. 데어데블이 범죄자 잡이에 집중하던 사이에, 피터는 더 이상의 피해자가 늘어나는 것을 걱정 중이었던 모양이다. 데어데블은 제 발아래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피터의 것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쿵쿵 울리는 피터의 심장 소리는 아침에 들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뉴욕에는 다양한 언론사가 있었다. 각자의 목표는 뉴욕의 다양한 소식을 빠르게 신문을 구독하는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싣거나 히어로들만을 표적으로 한 가십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마냥 기자들을 닦달하기도 했다. 밥그릇이 달린 기자들은 정치인의 다리를 물어뜯을 각오로 특종에 달려들테니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아랫사람을 겁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기사를 만들라거나, 그렇지 못하면 해고라거나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상사를 두고 일을 한다는 것은 괴롭겠지. 맷은 뷰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나, 피터의 입을 통해 종종 조나의 흉내나 기자들에 대해 듣곤 했다. 프론트라인 기자들이 얼마나 경쟁적인지 이야기하는 피터는 꽤 멋들어진 언론인다운 구석도 있었다. 신문 1면과 사이트의 메인을 노리는 기자들. 데일리 뷰글에서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스파이더맨의 기사가 완성되었다. JJJ가 통과시킬 만한 기사를 짜내는 기자들은 결국 그 입맛에 맞는 이야기로 사실을 교묘하게 엮어 선동 기사를 만들어냈다.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피터가 종종 속상하다며 우는소리를 할 때마다 맷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띤 채 그 이야기를 듣곤 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한탄이나 이야기가 재밌기도 했고, 그 흐름을 따라 쿵쿵 울렸다가 다시 작아지는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 것도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고소해줄까?

맷이 장난스럽게 물으면 피터가 미간을 찌푸리며 툴툴거렸다. 놀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결국 선동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스파이더맨의 악행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이다. 이리저리 거미줄을 치고 다니는 스파이더맨을 쫓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뉴욕에서 그리많지 않았다. 얼굴이 알려진 영웅들을 골라서 따라다니는 파파라치도 있었으나, 스파이더맨은 복면을 쓰고 오래도록 활동한 자경단원이었고 그의 신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나마 그와 가까운 사람은 피터 벤자민 파커다. 그것만이 뉴욕에 오래도록 알려진 소문이자 사실 중 하나였다. ‘스파이더맨 사진’은 대부분 피터 파커에 의해 찍혀졌다. 그 사진이 어디에 쓰이든 간에 피터는 스파이더맨을 찍었으며,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에게 찍혀주었다. 피터의 사진기자 커리어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결국 피터도 선동 기사를 만들어내는 일원 중 하나라는 말이었다.

비즈니스 파트너인 피터 파커를 위해서, 스파이더맨은 데일리 뷰글을 고소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맷의 농담에 피터는 고소를 취하해야만 했던 쓰디쓴 아픔을 아느냐며 맷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곤 했다. 데일리 뷰글은 피터에게는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이지만, 스파이더맨에게는 잘못 끼운 첫 단추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다시 사람들을 위한 기사를 내보려는 피터의 시도는 나쁘지 않다. 팔짱을 끼고 벤 유릭의 설명을 들은 데어데블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옥상 난간에 섰다.

“맷, 자네, 피터는 만나지 않고 갈 건가?”

난간에 여유롭게 서 있는 데어데블의 뒤통수를 향해 유릭이 물었다. 피터가 입원했던 일로 결혼 사실을 알고 있던 벤 유릭은 그때부터 걱정스럽게 맷을 바라보곤 했다. 입원했던 피터를 지키던 맷은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듯 보였지만, 유릭이 맷 머독의 삶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게 문제다. 충동적으로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유릭의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데일리 뷰글을 오가던 피터가 데어데블에 얽혀서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그것은 데어데블의 정체를 알고 있던 벤 유릭의 죄책감을 찌를 것이다. 유릭은 잠시 저를 돌아보는 데어데블의 마스크를 보며 작은 숨을 내뱉었다. 벤 유릭의 목구멍을 간질이며 튀어나오려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피터를 오래도록 보아온 어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말이다. 유릭은 주먹을 꽉 쥐었다.

“…피터의 가족에겐 제대로 알렸길 바라네.”

피터의 가족도 아니었기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지 않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드시 해야할 말이다. 피터의 숙모님도 모르는 결혼에 대해 알고 있는 벤 유릭이 코스튬을 입은 맷을 향해 차분히 말했다. 벤의 손에서 느껴지는 떨림과 긴장, 그리고 걱정. 그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는 맷은 벤을 돌아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고, 데일리 뷰글 사무실 안에 있는 피터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유릭의 걱정에서 틀린 점은 없다. 그 걱정에 변명하는 대신에, 맷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피터의 고집이 허락해준다면 그래야겠지. 메이 파커에게 숨기기 급급해서 결혼에 대한 문제도 말하지 않았을 피터를 떠올리며 맷이 생각했다. 가족에게도 비밀이 많은 것은 결국 맷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런 피터를 지적할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이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면, 결국 제대로 밝혀야만 할 것이다. 아침을 함께 보내었던 피터의 입술을 감촉과 따스함은 맷이 해야할 일을 명확히 알려주었다.

맷은 제게 쏟아지는 의심과 걱정을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피터와 함께 있는 삶은 꽤나 안정적이어서, 맷의 위태롭던 충동을 붙잡아주기 충분했다. 자연스럽게 옥상으로 향하는 피터의 움직임. 맷은 피터가 데일리 뷰글 옥상에서 옷을 갈아입을 생각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렸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옥상 문을 열고 나온 피터는 유릭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잠시 움츠러들다가, 이내 난간 위의 맷을 발견하고 놀라 작게 숨을 내뱉었다.

“어…, 제가 방해했나요?”

피터가 유릭의 발밑에 버려진 담배꽁초들을 힐끗 보았다.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는데 혹시나 방해한 거면 내려가겠다며 농담 섞인 말을 하는데, 유릭이 먼저 손을 저으며 피터를 말렸다.

“아니다, 피터. 난 이제 기사 쓰러 가봐야겠어.”

피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 벤 유릭이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데어데블과 피터를 옥상에 내버려두고 들어가는 유릭의 뒤통수를 돌아본 피터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려 난간 위에 서 있는 데어데블을 보았다. 벤 유릭이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 것이 분명하다. 맷과의 결혼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유릭이 피터를 배려해준 모양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데 방해한 것은 아닐까. 피터의 걱정을 알아차린 맷이 난간에서 내려와 피터에게 몇 걸음 다가오고, 그보다 빠르게 맷을 향해 달려간 피터가 자연스럽게 데어데블에게 붙었다. 이미 버릇처럼 되어버린 행동은 걱정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피터에게서 핫케이크 냄새가 풍긴다. 그 냄새의 출처를 알고 있는 맷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피터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그를 끌어당겼다. 다시 사무실로 가봐야 하지만 잠깐은 괜찮겠지.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 유릭을 생각하며 피터를 껴안은 맷은 피터가 입은 셔츠 아래에 있는 스파이더맨 슈트를 알아차리곤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순찰하는 대신에 사진을 팔러 왔다 싶었지만, 여전히 스파이더맨을 할 생각인 모양이다. 맷은 피터의 등을 가볍게 만져주었다. 반지를 낀 피터의 왼손이 맷의 가슴팍에 닿았다. 피곤하면 자러 가는 게 나을 텐데. 피터를 타박하는 대신 말을 아낀 매튜는 집에서처럼 피터의 근육을 손으로 가볍게 만져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을까?”

“…좋아요.”

맷의 제안을 수락한 피터는 데어데블 슈트를 손바닥으로 더듬다가 가벼이 웃음을 터뜨렸다. 피곤이 가득한 피터의 눈꺼풀은, 데어데블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꼭 감겼다. 맷과 포옹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데어데블과 껴안고 있는 것이 들키면 문제가 될 것 같지만, 새벽까지 활동한 탓에 잠이 몰려온 피터의 머리는 그 문제는 잠시 밀어버렸다. 맷이 알아서 해줄 거야. 피터는 데어데블의 레이더센스를 믿기로 했다. 프리랜서 사진 기자 피터는 데어데블 슈트를 입고 있는 맷에게 폭 안긴 채 피곤함에 젖은 몸을 기댔다.

다시 스파이더맨을 하기 전까지만 이러고 있자.

스파이더센스가 울리기 전까지, 맷과 피터는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루어진 비밀스러운 부부 사이의 스킨십이었다.

 


 

 

ne님이 그려주신 맷피터가 너무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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