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위장결혼 - 26

🕶x🕷/소설

2025. 10. 6. 19:12

처음부터 이러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만나서 속 시원히 이야기나 하자던 게 피터의 의도였다. 같이 순찰을 돌다가, 빌딩 위든 어딘가에 앉아서 우리 결혼 생활은 언제까지 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메이 숙모가 알아버렸고, 데일리 뷰글에서는 조나까지 알아차렸다. 결혼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약혼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어느 쪽이든 비슷했다. 결국엔 부부가 될 사이로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결혼식을 하지 않은 탓에 변명할 수도 없어서 도망치기를 택했던 피터는 맷을 만나면 결혼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부터 물어보아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확실히 대답까지 듣겠다는 결심이 참 뒤늦은 편이었는데, 메이 숙모가 모르셨다면 이 애매한 관계를 계속 끌고 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메이만 아니었다면 계속 이렇게 살고 싶었겠지. 피터는 하고 싶지 않던, 계속 미루고 싶었던 말을 꺼내기로 결심했었다.

맷, 나 계속 맷의 부인으로 있어도 돼요?

막상 생각하고 보니까 또 너무 조르는 말 같고, 계속 있고 싶다는 강요처럼 느껴져서 말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뭔가 조금 덜 원하는 것 같고, 그냥 알아서 정해달라는 수동적인 말이 없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말고는 확실하게 맷에게 물어볼 말을 짜낼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다 결혼 이야기를 물어요. 거짓말하는 게 힘들어요.

이건 너무 솔직하다. 피터는 팔짱을 끼고 바닥을 툭툭 차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좀 더 괜찮은 말이 없을까. 생각할수록 결국 남는 것은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결혼을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맷이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물은 적도 있었으나 피터가 제대로 대답한 적은 없었다. 난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맷과 함께 집에 오라며 자상하게 웃던 메이의 표정, 그리고 피터의 결혼을 축하해주던 집주인이나 이웃들, 그리고 뷰글의 직원들이 떠올랐다. 피터는 그들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피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럼에도 계속되는 거짓말에 지쳐 떠나갔다.

맷, 사실 나 외로워요.

결국 남는 말은 피터 자신의 욕심밖에 없었다. 사실 그게 진심인 거다. 외로워서 누군가 필요한데, 그게 맷이었으면 좋겠다는 거. 맷과 이런 식으로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피터는 늘 필요한 순간마다 맷을 찾아가서 비슷한 말을 반복했을 게 분명했다. 피터 파커의 주위에는 남아 있는 사람이 몇 없었고, 그중에서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스파이더맨과 피터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하고 휘청이다 보면 망쳐버린 사람들의 원망만 가득 남아서,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피터는 맷에게로 도망갔다. 이해해 줘요. 결국 피터에겐 같은 말이었다. 나 정말 외로우니,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피터는 그 진심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생각하며 옥상을 뚜벅뚜벅 걸어 다니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차라리 약에 취해서 그 변명으로 맷에게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정신없이 말이라도 내뱉는 게 나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답답했다. 넌 뭘 하고 싶은 거야, 피터? 계속 머독으로 살고 싶은 거야? 피터는 대답을 짜내지 못했다. 맷의 퇴근 시간은 아직 멀었고, 피터는 생각할 시간이 충분했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해서 말을 잘 고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스파이더맨은 맷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옥상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스파이더센스가 울리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와서 고민했다. 이번에는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멀리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해가 질 무렵에 옥상으로 올라온 맷은 데어데블 코스튬을 입고 있었다.

“일찍 왔네.”

데어데블 차림을 한 맷이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늦지 않았네’와 같은 인사였다. 피터는 그 말에 대답 대신 입꼬리를 살짝 올려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파이더맨 마스크에 가려져서 피터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맷은 그 작은 표정의 움직임도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낮부터 건물 위를 정신 사납게 걸어 다니던 피터의 발소리도 맷은 사무실에 앉은 채로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걱정이고 고민인지 건반을 마구잡이로 누르는 어린아이의 손길 같은 피터의 걸음은 맷이 일하는 내내 귀를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메이가 오늘 퇴원한다고 했었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스파이더맨을 부르는 대신에, 맷은 그 발소리로 피터의 고민을 추측하고 있었다. 메이에게 다른 문제가 발생했거나, 곤란한 일이 생긴 걸까. 그 추측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병원비에 대한 부분이었다. 피터가 아주 짧게 설명했을 뿐이지만, 교통사고라면 운전자에게 청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터가 옥상에서 타박타박 걸어 다니는 동안, 변호사 맷은 또 피터에게 필요한 도움을 내밀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건 나중에 말해주자. 피터를 놀라게 하는 것을 선호하는 맷은 피해보상 문제도 나중에 모두 해결한 뒤에 피터에게 말해줄 작정이었다. 메이와 따로 상담하면 되는 일이었다. 사고의 당사자는 메이 파커였고, 목격자가 있는지도 알아봐야 할 문제였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 소리를 내며 잠시 이웃을 도우러 떠난 사이에 맷은 메이가 일하는 자원봉사 센터를 통해서, 메이에게 연락을 했다. 피터가 총상을 입고 맷의 집에서 잠이 들었던 날, 이미 메이와 통화한 적이 있었던 덕분에 이야기가 쉬웠다. 피터에게 들었다며, 어떤 일이든 돕겠다는 맷의 말에 메이는 기쁘게 도움을 받아들였다.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피터가 모르게 이곳저곳에 연락하던 사이에 다시 옥상에 돌아온 스파이더맨은 다시 정신 사나운 탭댄스를 시작했다. 그게 재밌어서, 맷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다른 일도 처리할 수 있었다.

“내가 필요한 일이 뭐예요, 맷?”

“미리 말해주면 재미없잖아.”

“연쇄살인마 미끼가 되는 일 같은 건 미리 말해줘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요….”

맷은 피터의 투덜거림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피터의 등에는 총알이 만든 구멍이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아물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매끈한 피부만 남아 있는 것을 굳이 손끝으로 확인해 본 맷은 간지러운지 조금 움찔댈 뿐 손길은 피하지는 않는 피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손바닥 전체에 전해지고, 일반인보다 높은 체온이 맷의 손을 데웠다. 메이의 일 때문에 우울했던 피터를 떠올리면 역시 몸을 움직이는 게 낫겠지. 사람의 마음까지 꿰뚫어 볼 수 없는 맷은 피터가 어수선하게 움직이던 이유를 메이의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해결법은 결국 빌런을 찾아 때려주는 일이었다. 그건 맷도 좋아하는 해결책이었다.

“사라진 보석들을 찾으러 갈 거야. 그 과정에서 약간의 액션이 필요한 거지.”

“그런 영화 좋아해요. 빼앗긴 걸 찾으러 가서 복수하는 영화! 보통은 가족의 복수이긴한데….”

피터가 시끄럽게 영화 줄거리를 읊기 시작하고, 맷은 그걸 대충 흘려들었다. 벌써 흥분해서 즐거워하는 피터의 심장 소리만으로도 충분한 보람이 있었다. 보석상에서 사라진 보석의 행방을 찾아오던 맷은 장소가 특정되고, 그곳에 피터와 함께 갈 생각을 했다. 스파이더맨이 필요한 일. 그것은 무엇보다 피터를 불러내기 좋은 변명이자, 데이트 신청이다. 매튜는 쿵쿵 울리는 피터의 심장박동을 듣다가 피터의 턱을 슬며시 붙잡고 뺨에 입술을 맞췄다. 데어데블의 마스크와 달리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는 턱끝까지 모두 얼굴을 가리는 형태였고, 맷의 입술에는 매끈한 스판덱스의 감촉이 남았다.

“오늘은 다치지 않는 거야, 피터.”

초짜 히어로에게나 해주는 충고에 피터가 웃음을 터뜨렸다.

 


 

보석상에서 사라진 보석들은 어느 폐공장에 모여 있었다. 각 강도는 다른 인물이거나 상습범이었지만, 공통점은 부패한 경찰에게 일부를 떼어주었다는 것과 그 위에 이 강도질을 주도한 인물이 있다는 점이었다. 가게 대부분은 홉고블린이 판매하는 반지, 보석 따위를 강제로 매입했는데, 그걸 다시 역으로 강도질 당했다. 우주에서 사악한 외계인이 나타나서 뉴욕을 뒤집어 놓거나, 라이노 같은 힘을 지닌 빌런이 건물을 부수는 일이 잦은 도시에서 보험을 드는 것은 필수다. 맷은 이 모든 일이 부패한 경찰과 가게 주인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할 힘을 가진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여기서 누구보다 먼저 떠오른 것이 윌슨 피스크였고, 맷은 언제나 킹핀을 먼저 의심하는 버릇이 있었다. 킹핀이 맷 머독의 삶을 망치기 위해서 얼마나 애썼는가. 그 때문에 편집증까지 생긴 맷은 계속 피스크를 의심하며 단서를 쫓고 있었다. 결론은 결국 달랐지만 말이다.

폐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울리는 스파이더센스에 피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보아서는 그냥 사람이 없는 낡고 방치된 공장처럼 보이는데 누군가 숨어 있는 걸까. 피터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데어데블이 먼저 조심하라며 경고했다. 일렉트로야. 맷의 말이 끝나자마자 타오르는 냄새와 함께 강한 에너지가 피터와 맷이 서 있던 자리로 날아왔다. 스파이더맨은 가볍게 바닥을 디뎌 위로 뛰어오르고, 데어데블은 앞으로 화려하게 구르며 공격을 피했다.

“진짜 복수 영화가 됐네요!”

일렉트로를 발견한 스파이더맨의 목소리가 밝았다. 복수할 일이 있었던가. 스파이더맨이 제 위치를 찾아 움직이던 사이에 말을 곱씹어보던 맷은 곧 그 복수가, 맷이 화상을 입었던 일에 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제 담당 빌런 때문에 맷이 다쳤던 것을 피터는 여태껏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괜찮다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피터의 그 고집 같은 책임감을 덜어내지 못했다. 피터의 우울감을 달래주고자 명상에 힘썼던 것을 떠올리며 맷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데어데블 마스크는 맷의 입매를 가려주지 못한다. 즐거운 듯 올라간 맷의 입술의 피터에게도 보였고, 일렉트로에게도 보였다.

“데어데블…! 날 하찮게 여기다간 호되게 당할 거다!”

일렉트로가 맷이 서 있던 자리로 전력을 날렸다.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강한 전기는 데어데블이 빌리클럽을 이용해 피해버리자, 그 바닥에 새까만 자국을 만들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결국 일렉트로를 방전시키는 게 좋은 해결책이다. 전기를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일렉트로를 보며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던 피터는 거미줄을 이용해 일렉트로의 눈앞까지 다가갔다.

“스파키—! 난 안 보이는 거야? DD가 더 좋다, 이거지?”

“난 마음에 안 들어. 가져가, 스파이디.”

“귀찮은 건 다 나한테 주는 거죠? 그렇게 됐다, 맥스. 우리끼리 오붓하게 보내자!”

“시끄러우니까 입 닥쳐!”

일렉트로가 스파이더맨을 향해 전기를 휘두르고, 피터는 재빨리 거미줄을 이용해 보기만 해도 따가워 보이는 전기를 피했다. 저런 거에 닿았다간 온몸이 전기로 바싹하게 튀겨질 것이다. 일반인에 비해 강한 신체를 지닌 피터는 두어 번 정도는 견딜 수 있었지만, 기절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일렉트로를 약 올려서 힘을 쓰게 하며 방전시켜야 할까. 피터가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빠져 있는데, 데어데블이 아래로 손짓하는 게 보였다. 무언가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이럴 때 맷과 무전으로 연락할 수단을 두지 않았다는 게 아쉽다. 어벤저스 활동을 할 때는 무선장비를 지니면서 서로에게 연락할 수 있었는데, 이런 개인적인 활동에는 지원이 없었다. 나중에 제대로 따져야겠어. 지구를 구할 때 말고도 그냥 작은 동네를 구할 때도 지원해 달라고 말이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도 피터는 일렉트로가 저를 이용해서 사격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몸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스파이더맨 슈트가 전기에 살짝 스치며 섬유가 불타고, 구멍이 났지만 움직임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그곳에서는 거미 통구이가 있을 거다. 스파이더맨은 전기에 튀겨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몸을 놀렸다.

“Magoo,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전기를 열심히 피하며 피터가 맷을 향해 물었다. 피한다고 하지만 전기는 너무나 빠르고 따가워서 발가락 끝이나 손끝, 피부가 살짝 스쳐서 쓰라림이 남았다. 이 정도는 한 시간도 가지 않을 테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피터는 제가 미끼를 하는 사이에 홀로 폐공장 뒤편으로 가버린 데어데블을 찾아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일렉트로는 피터의 농담 몇 개에 성질이 단단하게 났는지 사라진 데어데블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일렉트로 넌 보스 타입이 아니잖아.

맥스, 전기는 위험하니까 부모님 허락을 맡았어야지!

같은 농담이 어지간히 화를 돋운 모양이다. 모처럼 누군가의 명령을 받지 않고, 스스로 사람을 부려 강도질을 시킨 일렉트로의 성장은 문제라면 문제다. 교도소에 다녀오면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을 해야 하는데, 범죄 분야에서만 성장하는 제 담당 빌런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희들, 제발 좋은 사람이 될 순 없겠니?

“스파이더맨, 이쪽이야!”

공장 뒤편에서 나온 데어데블이 외쳤다. 일렉트로의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없던 피터는 맷의 부름에 곧장 거미줄을 근처로 뻗어 빠르게 움직였다. 맷의 뒤쪽으로 꽤 큰 물탱크가 있었다. 공장 가동을 위해서 설치했던 모양인데 이제는 방치되어 버린 공업용 물탱크였다. 안이 비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지만, 맷이 말했으니 차 있는 거겠지. 데어데블을 신뢰하는 피터는 망설임 없이 물탱크로 가서 그것을 들기 위해 애썼다. 공업용이라 무게가 상당한데, 안에는 물까지 가득해서 드는 게 꽤 어려웠다. 온몸에 힘을 다 쏟아서 물탱크를 들어 올리려고 애쓰는 사이에도, 피터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일렉트로의 전기를 피하라는 의미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대로 피하면 물탱크가 터져서 방전시킬 수단이 사라질 것이다. 스파이더센스의 경고를 무시하는 게 습관인 피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제 두 팔에 힘을 쏟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막을 테니까, 넌 물탱크를 들어!”

“DD!”

피터가 물탱크 들기에 집중하던 사이에 다가온 일렉트로를 맷이 막고 있었다. 일렉트로가 휘두르는 전기를 피하는 것은 간단하다. 쉬지 않고 움직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피터는 물탱크를 들어야 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빌리클럽을 쥔 데어데블은 망설임 없이 일렉트로 앞에 섰다. 빌리클럽을 던져 머리를 맞춘다고 해도 기절할 가능성이 낮았다. 맷은 어떻게 해야 일렉트로의 시선을 피터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는데, 일렉트로의 손에서 강한 전력이 뿜어져 나갔다. 물탱크를 들기 위해 애쓰는 피터가 아닌, 맷을 향한 공격이었다. 스파이더맨의 담당 빌런은 단순한 면이 있었다. 눈앞에 토끼가 두 마리가 있으면, 잡기 쉬운 쪽보다 가까운 쪽을 노린다는 것이다.

맷은 피터에게 전기가 맞지 않도록 위치를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위험해요…!”

그때 피터가 끼어들었다. 바닥과 고정되어 있던 물탱크는 반쯤 나사가 뜯겼지만, 여전히 제자리에 멀쩡히 붙어 있었다. 물탱크를 내버려두고 맷과 일렉트로 사이에 끼어든 피터는 일렉트로를 향해 거미줄을 쏘았다. 일렉트로와 자주 싸우며 웹슈터에 절연 기능을 더해보려 했으나 완벽하진 않았다. 고무장갑을 끼거나 절연복을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는데, 문제는 일렉트로가 점점 강해졌다는 점이다. 피터가 어려서부터 만들어온 기술은 더욱 강해진 상대 앞에서 한물간 고철 더미가 되곤 했다.

일렉트로에게 붙은 거미줄은 완벽한 전선이 되어, 거미줄을 타고 전기를 전달했다. 찌릿한 아픔을 참아내며 피터는 거미줄을 당겨 일렉트로를 물탱크로 처박았다. 강한 힘과 전력에 찌그러진 물탱크 사이로 일렉트로가 풍덩 빠졌고, 그 안에서는 눈으로 보일 정도로 전기가 튀어 올랐다. 물에 담그는 것이 무엇보다 빠른 해결책이다. 감전된 몸으로 작게 숨을 헐떡이던 피터는 곧 앞으로 꼬꾸라졌다. 감전은 익숙하다. 죽진 않겠지. 피터는 제 부상에 익숙했다.

 

 

결국 쓰러진 피터를 보살펴야 하는 것은 맷이었다. 맷은 강한 전기가 튀어 오르는 물탱크 내부를 무시하고, 쓰러진 피터를 살폈다. 피부가 그을리고, 몸이 전기에 달아올라 뜨거웠다. 피터가 아니었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일렉트로가 내뿜는 전력은 웬만한 공업용보다 강했다.

호흡이 옅었다. 결국 맷은 피터의 마스크를 올려 입술을 드러내고, 망설임 없이 그 입에 제 입술을 포갰다. 턱을 손가락으로 잡아 기도를 확보하고, 입술 사이로 숨을 불어넣었다. 맞닿은 입술이 차가워질까 두렵다. 인공호흡을 하며 맷은 피터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애썼다.

“…매앳?”

“스파이디.”

맷이 숨을 불어 넣는 사이에 피터가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정신이 들었다. 당황해서 맷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피터를 껴안은 맷은 작은 한숨을 뱉었다. 감전된 사이에 잠시 호흡이 옅어졌을 뿐이다. 맷의 품에 안긴 피터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다가, 이제는 잠잠해진 물탱크를 발견하곤 일렉트로가 도망친 거 아니냐며 맷의 가슴팍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도망치면 어떻게 해요. 제가 감전당했다는 사실보다 빌런을 잡는 게 먼저인 피터의 태도가 재밌어서 작게 웃음을 터뜨린 맷은 피터의 코를 가볍게 꼬집어 주고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렉트로는 기절했어.”

물탱크 속에 처박혀서 둥둥 떠 있는 일렉트로는 많은 양의 에너지가 빠져나간 여파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저대로 묶어서 경찰에게, 혹은 FBI에게 인계하면 될 것이다. 피터에게 인공호흡을 하던 동안에도 맷은 물탱크를 신경 쓰고 있었다. 놓치면 피터가 다시 일렉트로를 잡아야 한다며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게 분명해서, 놓칠 수 없었다.

“와, 성공적인 복수네요!”

“피터, 네가 감전당하는 건 시나리오에 없었어….”

맷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다치지 말라는 말을 결국 어겨버린 피터를 탓하는데, 피터는 오히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굴었다.

“난 이뤘어요. 맷이 안 다치는 거.”

그게 내 목표였거든요. 피터의 목소리가 통통 튀어올랐다. 기쁨으로 가득한 목소리에 맷은 한숨을 쉬며 피터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이번에는 피터도 지지 않았다.

오늘은 맷을 지켰다. 맷이 맞았더라면 얼굴에 또 화상이 오래도록 남았을 것임을 아는 피터는 제가 대신해서 맷을 지켜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요즈음에는 늘 누군가의 삶을 망치고, 엉망으로 만드는 게 특기인 것처럼 살았다. 약에 취했을 때 들려오던 목소리는 끊임없이 피터를 탓했고, 메이조차 지키지 못했을 때 정말로 바닥까지 처박힌 기분을 느꼈다. 망치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피터. 제 목소리를 향해서 피터는 이제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드디어 가까운 누군가를 지킨 것이다. 슈트에 구멍을 내고, 피부에 전기 화상을 남긴 채로 미소 짓는 피터의 태도에 맷은 결국 피터를 꼭 껴안았다.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기 전까지 맷과 피터는 짧게 입을 맞췄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키스하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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