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

SPIDER-MAN

2019. 5. 12. 01:05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어. 내가 방사능 거미에 물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딱 그 정도의 상상을 말이야. 엄청난 변화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냥 사소한 변화로도 생각할 수 있을 거야. 피터 파커가 그 박람회에 가지 않았다면 어떤 미래가 있었을까 하는 그런 상상정도야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박람회를 갔더라도 갑자기 배가 아파서 뛰쳐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잖아. 굳이 피터 파커가 아니었더라도 이 자리에는 누군가가 스파이더맨으로 채워주었겠지. 스파이더맨이 된 것은 내 의지였을까? 아니면 이것조차도 운명의 거미줄이라는 것의 일종이었을까. 가끔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해. 그냥, 과학이나, 뭐 그런 걸 제외하고 말이야. 운명의 거미줄이니 몰런이니 하는 것들은 솔직히 과학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잖아. 토템? 신부? 제물? 도대체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든 그 방사능 거미가 그냥 거미였을까? 수많은 질문들 앞에서 나는 가끔 아찔해진단 말이지. 과학자로서-지금은 연구소에 있지도 않지만 그랬던 사람이니까- 답을 아직도 모르겠어. 닥터 스트레인지가 있는 마당에 무슨 고민인가 싶긴 하지. 그냥, 내가 방사능 거미에 물리지 않았더라면 파커럭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앗아가려 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그런 상상이야. 바보 같은 상상이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벤 삼촌의 그 말을 나는 싫어하지 않아. 좋아하지. 그리고 언제나 내 가슴에 새겨두고 멈춰 서려고 할 때마다 그 말을 떠올려. 내 삶은 책임으로 가득 차 있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책임을 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어. 스파이더맨을 포기한다는 건 피터 파커가 벤 삼촌을 죽게 내버려두었던 순간을 무한히 반복하는 짓이야. 정확히는 벤 삼촌을 죽인 강도가 지나쳐가는 것을 그저 내버려두었던 그 순간에 영원히 갇혀 있다고 해야겠지.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의 실수.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 나는 달려왔어. 온몸이 부서져서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분명 있었지. 아무리 방사능 거미에게 물린 사람이라지만 나는 결국 사람인 걸. 건물 잔해에 수없이 깔려서 수없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그 안에서 포기라는 단어를 곱씹곤 하는 거지. 몸을 깔아뭉개는 뉴욕 덩어리들이 내게 바보 같은 스파이더맨이라도 말하는 거야. 조나 제임슨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스파이더맨은 광대다!’하며 내 몸을 짓누르는 거지. 그 아래에서 갈비뼈가 나가기도 하고 팔이나 다리가 부서지기도 할 거야. 어쩌면 장기가 눌렸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때는 포기하자라는 말이 혀 위를 굴러다니는 거야. 그냥 내뱉으면 되는 일이지. 이 순간에 내가 포기해도 죽는 사람은 없으니까. 스파이더맨을 빼고는 누구도 죽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나는 이것들을 들어올리기에는 너무 지쳐 있는 걸. 이제 그만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그나마도 일어설 힘들을 가져가버리니까 결국 누워버리는 거야. 스파이더맨이었다면 그대로 누워서 죽을 때를 기다렸겠지.

 

마스크를 벗으면 그 아래는 피터 파커야.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 참 이상한 조합이지만 결국은 같은 사람이지. 피터 파커는 그 아래에서 멈춰 서서는 안 된다고 말해. 아직도 구할 사람이 너무도 많은 걸. MJ를 생각하고-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메이 숙모를 생각하고, 그리고 벤 삼촌을 생각해. 피터 파커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러면 다시 힘이 생기는 거지. 결국 그 뉴욕 덩어리들에서 나오면 다시 싸우는 거야.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냥 이런 나날들의 반복이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주 그랬던 것 같아. 죽을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도 다시 그 위기로 몰아넣는 삶이지. 온몸으로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다면 괜찮은 조건이 아닐까. 하느님 듣고 있죠? 그러니까 다음 삶에는 기왕이면 방사능 톰 크루즈에게 물리게 해주세요.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

 

나는 피터 벤자민 파커야. 그리고 스파이더맨이지. 당신의 친절한 이웃이기도 하고, 어메이징하기도 하지. 내 삶을 이렇다 저렇다 정리할 수는 없어. 내가 생각해도 내 이야기는 엉망으로 꼬여 있거든. 그냥 중요한 무언가를 중심에 두고서 힘차게 달릴 뿐이야. 멈춰서기도 하고, 어릴 적에는 슈트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두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았어. 사람들을 돕고, 인사를 건네는 일 말이야.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당신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입니다.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걸. 나쁜 놈을 때려잡아서 경찰에게 넘기는 일도 있지만, 본질은 그냥 친절한 이웃이야. 너의 친절한 이웃이지. 인사를 건네고 농담을 하고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거야. 방사능 거미에 물려서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해. 그냥 피터 파커였어도 나는 그렇게 했을 거야. 나는 두 분에게 이렇게 배워왔으니까.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그렇게 살기위해 노력할 거야.

 

자,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갈게. 나는 가끔 내가 방사능 거미에 물리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고민해. 답은 늘 정해져 있지. 힘이 없는 피터 파커도 늘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노력할거야. 소매치기에게 덤벼들었다가 얻어맞기도 하고, 주차요금을 대신 내줬다가 경찰에게 체포되기도 하겠지. 벤 삼촌이 곁에 계시다면 정말로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메이 숙모가 곁에 계신 걸. 거미에 물렸다고 해서, 그리고 물리지 않았다고 해서 내 삶이 흔들리진 않았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과학적으로도 분명히 그럴 거야. 과학적으로라는 말을 붙이면 굉장히 논리적으로 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이건 사실이라는 말이야. 나는 스파이더맨이고, 피터 파커야. 그러니까 나는 늘 누군가를 돕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을 거야. 그게 내 삶의 방식이니까. 그 결과가 나를 짓누른다할지라도 나는 노력하는 걸 멈추지 않을 거야.

20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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