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uel+Peter B.] Paker's magic - 01

SPIDER-MAN

2023. 8. 20. 22:35

0.

 피터는 이것을 마법이라고 불렀다. 파커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일종의 마법 같은 행위였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무언가가 해결되거나 갑자기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피터는 자주 그렇게 슬픔을 달래곤 했다. 어느 집에나 있는 흔한 풍습처럼 갑작스럽게 만들어지고 아이들에게 옮겨갈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피터는 생각한 것을 참지 못하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불평과 불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화가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터 벤자민 파커의 유년기는 뜨거웠고 동시에 차가웠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던 까닭이었다. 스스로를 피터 벤자민 파커라고 인식할 수 있을 시절부터 비어 있던 자리에 자주 곁눈질했고, 그곳을 자주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채우곤 했다. 아무리 쏟아내어도 메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 그 어둠을 채워준 것은 우습게도 가족이었다. 그 구멍에서 어둠이 스며들지 않도록 뚜껑을 단단히 닫아준 두 분의 사랑은 여전히 피터에게 남아 있었다.

무언가 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만 가득 받고, 빌런에게 죽이 되도록 맞고 돌아온 날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사랑으로 단단히 여민 마음이 일그러져서 언젠가의 다짐을 잊어버리게 될 즈음, 그때마다 피터가 향한 곳은 메이 숙모의 집이었다. 피곤해 보인다는 말 한 마디에 피터는 금세 웃음을 터뜨리며 배고프다는 투정을 할 수 있었으며, 배가 빵빵해지도록 휘트케이크―메이숙모만의 비밀재료가 들어간 것으로 팬케이크와는 달랐다―를 먹고서 소파에 누워 배를 두드리고 있으면 다시 일어설 힘이 났다. 푹신하지 않은 낡고 작은 소파에 몸을 구겨 올려두면 마치 작은 꼬마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화가 나는 일이 있었어요. 플래시가 또 발을 걸어서 넘어졌는데 주위 애들이 웃어버리는 거예요. 저는 아팠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플래시에게 ‘오, 머리가 나쁘니까 발을 어디에 두어야하는지도 생각을 못하는 모양이지? 생각을 하고 살아, 플래시!’라고 했더니 주먹이 날아오잖아요. 다행이 그 때 선생님이 와서 피할 수 있었는데… 메이숙모, 듣고 계세요? 그때면 메이숙모는 피터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물론, 물론이지. 하고 대답해주곤 했다. 얼마든지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들어줄 것만 같은 그 미소에 피터는 한참동안 수다를 떨었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잠에 빠져들었다. 소파에 누워 있으면 피터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이게 마법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리고 이 마법은 확실히 통할 수 있다.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친절한 이웃으로 20년 넘게 활동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상대했으나 요 근래의 상대는 너무도 벽이 높았다. 미겔에게는 마법이 필요해. 그게 바로 피터가 낡아빠진 소파를 한 손에 들고 있는 이유였다. 수없이 드나들었으나 여전히 낯설고 위험하게 보이기만 하는 차원포탈 앞에 선 피터는 긴 한숨을 뱉고 다시 미소를 띠었다.

즐겁고 유쾌하게, 그게 네 특기잖아? 스파이더맨.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

“오, 미겔! 아직 깨어 있었네?”

마치 자신의 집인 마냥 자연스럽게 찾아온 피터가 유쾌하게 말했다. 중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천장에 편하게 서 있는 그를 잠시 올려다보던 미겔은 피곤한 눈가를 문지르며 파커…하고 한숨을 뱉었다. 다양한 피터 벤자민 파커들 중에서도 제일 반갑지 않은 이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아마도 예전에는 제일 편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 기억조차도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피터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었다.

쌓여 있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진행형으로 끊임없이 늘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 미겔에게 그는 유쾌하지 못한 침입자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여러 차원의 사건, 사고들에서 한 발 벗어난 것처럼 구는 피터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하찮게 보였다. 세상은 해결해야할 것들의 연속이었다. 과거에는 이 세상을 해결하면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미겔 오하라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의무감에서 멀어지고 싶었고, 실제로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미겔의 삶에는 그것들이 중요해졌고, 이제는 다른 무엇들보다도 세상을 안정시키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했다. 그러니 그런 삶에서 떨어져 있는,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 파커들 중에서도 다소 느슨한 성격을 갖고 있는 피터 B. 파커는 이제는 방해가 되는 존재일 뿐이다. 능력은 높이 사고 있지만 성격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미겔은 피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라일라”

습관처럼 라일라―홀로그램 가상 AI비서였다―를 부른 미겔은 잠시 말을 골랐다. 일단 부르고 생각하는 버릇 좀 고치라는 잔소리 같은 푸념이 떠올랐으나 곧 그것이 라일라가 한 말이 아니라 어느 다른 거미가 한 말임을 깨닫고 그는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지금 몇 시야?”

시간도 잊어버린 채 일에 몰두했음을 미겔은 그제야 깨달았다. 오늘이 며칠이며 몇 시인지. 머릿속은 여러 차원에서 본 사건사고들로 가득했고 그 사건들이 발생한 시각과 날짜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 중에서 미겔 본인이 서 있는 차원에 대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에바욕 기준 시? 아니면 피터의 차원? 누에바욕은 지금 햇살이 반짝이는 오후 1시야. 그리고 피터의 차원인 지구-616B의 뉴욕은…, 자정이네.”

손바닥만 한 작은 모습의 라일라가 다양한 시간대를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말했다. 라일라의 말이 정확하다면, 당연히 틀릴 리가 없지만, 미겔의 차원이자 스파이더 소사이어티 본부가 있는 누에바욕의 시간대로 보자면 지금은 잠을 잘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가 깨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당연히 피터의 인사말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미겔이 그것을 지적할 새도 없이 피터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메이데이가 세상모르고 잘 시간이지. 이럴 때가 아니면 자유시간이 없다니까?”

라일라의 말이 거의 끝나는 것과 동시에 붙여진 장난스러운 말에 미겔은 다시 피터를 올려다봐야했다. 천장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여전히 천장에서 떠들고 있는 피터는 몇 시간 전에 본 모습처럼 여전히 분홍색 목욕가운을 입은 채였다. 중력이라는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무시하는 피터와는 달리 포근한 가운은 아래로 뒤집혀 있었다. 피터가 가운의 끈을 대충이나마 허리에 둘러 매듭을 지어둔 덕분에 가운이 벗겨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양이었다. 피터는 한 팔을 편 채 무언가 커다란 물건을 하나 쥐고 있었다. 피터의 덩치보다 조금 큰 그것을 쥐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조금 이상한 말이겠으나 미겔은 이런 일이 익숙했다. 미겔 자신에게도, 피터에게도, 그리고 이 건물에 대부분의 이들에게 이런 일들은 언제나 있는 상황이었다.

피터가 천장에 서서 들고 있는 것은 소파였다. 어두운 공간에서 더욱 그림자가 져서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었으나 미겔은 빛에 예민했으며 시각이 너무나―과할 정도로― 좋은 편이었다. 어두침침한 공간에서도 피터가 들고 있는 소파가 연두 빛의 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중간 중간 보풀이 일어나서 낡고 헤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미겔이 소파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깨달은 피터가 과장된 미소를 지어보이며 천장에서 가볍게 아래로 착지했다. 소파는 어느새 피터의 옆에 사뿐히 내려와 있었다.

“파커, 그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채하며 미겔이 물었다. 그 편을 피터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탓이었다. 서프라이즈, 깜짝 선물이 특기라며 꽃 몇 송이를 들고 나타났던 모습이 잠시 떠오르고 다시 지워졌다.

“소파 하나 없는 SPIDER CAVE―거미 동굴―가 어디 있어?”

그래서 내가 가져왔지, 하며 피터가 두 손을 펼쳐 소파를 가리켰다. 미겔의 미간이 조금 구겨졌다.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 없다는 거 알잖아…, 피터.”

피곤에 물든 목소리로 미겔이 말했다. 처음의 다짐과는 달리 조금 유해진 마음은 결국 단호하던 선을 또 흐릿하게 만들어버렸다. 이게 바로 피터가 불편한 이유였다. 과장되게 웃고 행동하는 피터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겔은 알고 있었다. 같이 웃고, 바보 같은 농담을 하고, 어두운 방을 나가서 이야기를 하고… 정말로 형편없는 바람이다. 그 호의가 감사하기도 하였으나, 응해줄 생각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게 피터와의 사이에 선이 필요한 이유였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선을 넘지 못할 것임을 미겔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피터가 포기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접어두고 조금은 도움 되는 행동을 해주면 안 되겠어, 피터? 넌 그럴 능력이 있잖아. 미겔은 구태여 그런 말을 입에 담진 않았다. 아직까지 그는 자제심을 갖고 있었고, 스스로를 다룰 줄 알았다. 이것은 쓸모없는 다툼이었다.

“넌 휴식이 필요해, 미겔. 라일라, 미겔이 마지막으로 잔 게 언제야?”

“흠… 휴식 시간이라는 걸 보낸 건 13시간 전이고, 제대로 된 수면을 말하는 거라면 이제 곧 47시간이야. 그때도 깊이 자진 못했고, 미겔의 심장박동이랑 호흡이 불규칙적이었거든.”

봐, 내 말 맞지? 자연스럽게 라일라를 부른 피터가 조금 진지한 눈으로 미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겔의 옆에서 공중에 떠 있던 라일라는 자연스럽게 피터의 곁으로 가 있었다. 라일라는 피터의 비서가 아니었으나 지금으로서는 미겔의 편도 아니었다. 넌 휴식이 필요해. 고집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두 얼굴을 보고 있으니 미겔은 짜증이 몰려왔다.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감정이었다. 걱정을 받고 있는데 화를 낸다니, 이렇게 몰상식하고 무례할 수가! 역시 너다워! 스스로를 탓하는 말만 떠오를 뿐이었다. 피터와 라일라의 걱정은 미겔에게 닿지 못했다. 미겔이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었다.

잠을 자기 위해 누우면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서는 그 아이의 목소리도 있었다. 감히 쉴 생각을 한다니 얼마나 이기적인 본능인가. 행복을 바랐던 그 순간조차도 죄악이 되어 모든 과거가 후회로 점철되었다. 그 기분을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유쾌하게 웃는 피터를 볼 때면 미겔은 그에게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이러한 충동이 드는 것조차 그를 죄책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피터의 삶을 알고 있었다. 황금기 영웅의 시대라 칭송하는 찬란한 시대의 영웅이 겪어온 길을 미겔은 이미 수많은 피터 파커들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 길은 완벽하게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였다. 20년이 넘도록 활동해오며 여러 사건들에 닳아 있는 나이든 피터는 미겔이 알고 있는 여러 피터들 중에서 노련했고 지쳐 있었다. 그런 면이 맞았기 때문에 함께 자주 활동을 했었다. 가장 전형적인 피터 벤자민 파커이지만 동시에 다른 피터들과는 다른 비정상적인 피터 벤자민 파커. 피터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지쳐 있지만 그것을 그만두지 못한다. 아마도 과거에는 그래서 피터에게서 기시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미겔의 어깨에는 너무도 많은 죄책감이 얹어져 있었고, 피터가 그것을 이해할 길은 없었다. 그러니까 피터는 이 일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겔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깨를 감싸 쥔 손이 조금 축축했다. 손바닥에 땀에 배여 있던 탓이었다. 아래에 서서 미겔을 올려다보던 피터는 어느새 곁에 와 미겔의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 미겔은 눈알을 굴려 피터를 보았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까의 웃음은 어디로 갔는지 진지함이 남은 얼굴에는 피곤과 슬픔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피터의 눈에 미겔 자신이 위태로워 보였으리라,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미겔은 스스로가 불안정함을 인정했다. 수면부족과 피로감이 그를 좀먹고 있었다.

“내가 좋은 방법을 알거든.”

진지한 채를 하던 파커는 어느새 다시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 눈가가 주름졌다. 그가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증거였다.

“파커가의 마법을 보여줄게, 미기(Miggy).”

장난스럽게 웃는 노련한 마법사가 내민 손을 못이긴 척 잡을 수밖에 없었다. 피터는 선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넘어버리는 침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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