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위장결혼 - 05

🕶x🕷/소설

2025. 6. 14. 16:02

  • 제목미정
  • ne님이 말씀해주신 위장결혼 맷피터 설정에 감명을 받아.. 시작되었습니다

 

스파이더맨과 데어데블은 활동시간을 정해두지 않는다. 기분이 내킬 때 언제든 슈트를 입고 창문으로 나가면 그 시간이 바로 자경단 활동을 시작하는 때였다. 주로 범죄들이 밤에 이뤄지는 것들이 많긴 했지만 사소한 일들은 해가 떠 있을 때도 끊임 없이 발생했고, 둘은 어떤 일이든 뛰어들었다. 그래서 피터는 데어데블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맷에게 전화를 걸었고 시간 따윈 생각해본 적이 크게 없었다. 피터 본인이 시간감각을 잃은지 오래였고 맷도 그것에 대해 지적한 적이 많지 않아서, 지각만 아니라면 상관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맷을 불러내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피터는 이제와서 그 일이 조금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변호사라는 건 생각보다도 많이 바쁜 직업이다. 맷과 함께 생활하며 침대에서 나란히 잠에 들기 시작하며 피터는 그제야 맷 머독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깊이 잠들었던 탓일까. 오늘도 맷의 침대에서 깨어난 피터는 비어 있는 옆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요 며칠 맷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었다. 원래 맷과의 거리감은 이 정도가 맞긴 했지만, 부부로 살면서 얼굴을 못 본 적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라 이 잠깐의 공백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제 피터가 소파 위에 던져둔 스파이더맨 슈트 장갑이 가지런히 테이블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 맷은 분명히 집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피터가 눈을 뜨고 발견한 것은 텅빈, 온기가 남아 있는지 모를 빈 공간뿐이었다.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우유를 들고 집안을 걸어다니며 목을 축인 피터는 맷이 귀가했다는 증거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다녔다. 세탁바구니에 있는 맷의 옷가지는 분명 어제는 없던 것이고, 피터가 대충 던져둔 것들이 반듯하게 놓여져 있는 것은 어느 마법사가 요술을 부린 게 아니라면 분명히 맷이 한 일이다. 피터는 새삼스럽게 맷이 예민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맷은 새벽에 나간건가…? 변호사는 정말 바쁘구나.”

밤동안 맷의 셔츠를 멋대로 꺼내어 잠옷으로 쓴 피터는 그 차림 그대로 찬장에서 시리얼을 꺼내 식탁에 앉았다. 맷은 며칠째 일에 치여 제대로 귀가하지 않고 있었고, 그동안 피터의 아침과 저녁은 대체로 시리얼이나 과자가 되었다. 맛있고 간편하고 저렴한 식사. 피터가 맷과 함께 살기 전부터 꾸준히 가져오던 식단이었다. 맷과 부부가 되어 살기 시작하고서는 잘 먹지 않던 것이기도 했다. 예전에 매튜의 집에서 멋대로 우유를 꺼내먹을 때에는 찬장에서 시리얼이나 감자칩도 꺼내어 먹곤 했는데, 결혼을 하고나니 맷은 피터의 식단을 자연스럽게 바꿔버리고 말았다.

열 살짜리 어린애 식단이잖아. 예전부터 맷은 피터가 정하는 메뉴에 작은 핀잔을 얹어주곤 했는데, 가끔은 제대로된 걸 먹으라며 밥값을 주기도 했었다. 100달러 지폐를 내미는 데어데블이 유명 변호사 맷 머독였음을 떠올리며 피터는 조금 느껴지는 양심의 가책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조금 얻어먹는 정도면 괜찮겠지. 그렇게 피터는 멋대로 맷의 집에 찾아가 우유를 마시거나 시리얼을 훔쳐먹는 거미가 되었고, 맷은 이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흘린 건 제대로 닦으라는 것 정도가 맷이 하는 잔소리의 전부여서 피터는 매튜의 집에서 시리얼이나 간식을 먹는 것을 꽤 좋아했었다. 스파이더맨을 하다보면 스파이더센스가 울리지 않고 간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드물었고, 언제나 바깥에서 뉴욕의 공기와 함께 해야했는데 맷의 집은 스파이더맨의 웹스윙으로 갈 수 있는 곳 중 제일 안전하고 조용한 장소였다. 게다가 소파도 푹신해서 피터는 맷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반강제적인 동거생활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부가 되고서는 아예 아침과 저녁을 내내 같이 먹어버려서 피터는 시리얼 타임을 잃고 말았다. 맷이 사주거나, 만들어주는 식사가 싫은 건 아니다. 정말 맛있고 즐겁지만— 그래도 익숙한 맛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결혼 생활의 일탈이라는 게 있다면 분명 이런 걸 거야. 마시멜로 시리얼을 두 그릇 가득 먹는 거!”

우유를 흡수한 마시멜로를 입에 넣으며 피터는 설탕의 단맛으로 잠깐의 행복에 빠졌다.

맷의 티셔츠에 우유 얼룩을 만들며 시리얼을 가득 먹은 피터는 기지개를 주욱 피며 식탁 의자에 기대어 오늘의 일과를 생각하기로 했다. 맷은 변호사 일로 정말 바쁜 모양이고, 피터는 여전히 백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스파이더맨 사진을 찍는 것이 다였는데 최근 찍은 사진들 중에서 조나의 마음을 돌릴 사진이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JJJ는 심각하게 기분파였고, 시끄럽고, 화도 많고, 사진을 제대로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피터는 그런 데일리 뷰글의 편집장에게 사진을 팔아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적어도 몇 장은 팔아야 맷에게 오늘은 내가 사겠다는 말도 할 수 있을 텐데, 보증금으로 살아가는 피터는 여전히 맷에게 얻어먹는 처지였다. 맷이 지적한 적도, 화를 낸 적도, 생색을 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책상에 여러 가구까지 사준 맷에게 맥주 한 잔 못사는 처지는 스스로 생각해도 암울했다.

뷰글에 들려서 사진을 팔아보고, 패트롤을 돌다가, 맷에게 들려서 오늘 시간있냐고 물어보기.

피터는 멋대로 데어데블과 함께 JOE’S BAR에 가야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슈트를 입고 들어가도 주인이 화내지 않는 바. 피터는 그곳에서 맷과 함께 한참 수다를 떨며 앉아있곤 했던 것이 떠올랐다. 술을 잘 마시지는 않는 피터였지만, 맷이 마시는 동안 옆에서 이야기를 하며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스며드는 게 좋았다. 데어데블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이해해주는 사람이었고, 그 앞에서 스파이더맨은 마스크 밖과 안 어느 이야기든 늘어놓을 수 있었다.

“부부생활에도 데이트는 필요한 법이니까…”

피터는 결혼이라는 어색하고 무시무시한 단어를 애써 가볍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완벽한 밤이 될 거야. 피터는 찍어서 현상까지 마친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맷이 일부러 만들어준 피터의 방에는 이제 책상과 의자, 스파이더맨 슈트를 넣어둘 옷장이 생겼다. 그곳에 놓인 벤 삼촌의 것과 똑 닮은 테이블은 이제 피터에게 사진을 늘어놓거나, 거미줄 용액을 만드는 약품을 늘어놓는 장소가 되었다. 일에 지쳐 있을 맷을 떠올리며 피터는 책상 위에 찍은 사진들을 늘어두고 반드시 조나에게 사진을 팔겠다고 결심했다.

똑똑

갑작스럽게 현관에서 소리가 들렸다. 방안에서 사진을 검토하던 피터가 주춤주춤 현관으로 가는 사이에, 문밖의 사람은 다시 한 번 가볍게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지. 피터는 현관 앞에 서서 잠깐 이 집에서 멋대로 손님—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을 맞아도 괜찮은가 고민에 빠졌다. 스파이더센스가 얌전한 것을 보면 적어도 악의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고, 그냥 최상층까지 찾아와서 부탁을 하는 조금 이상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예전 월셋방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대체로 이런 방문객은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이나 집세를 내는 날짜가 되기도 전에 재촉해오는 집주인이었다. 하지만 맷은 세입자가 아니었으니 월세 재촉은 아닐 것이다. 세금이라도 까먹은 걸까. 집주인은 잠깐 아주아주 바쁜 일로 집을 비우고 있다며 능청스럽게 대답할 준비를 마친 피터는 숨을 삼키며 잠금장치를 풀고 현관문을 열었다.  피터의 예상과는 달리 문 앞에는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아래층에 사는 라일리 부인이었다.

“머독 씨, 사과파이를 구워봤는데 좋아하시나요?”

부인이 접시에 올려진 동그란 파이를 피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머독 씨라는 호칭이 너무도 어색해서 피터는 잠깐 그게 맷을 부르는 말인 줄 생각했다가 이내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말임을 깨달았다. 맷의 아파트 이웃들과 제대로 인사한 적이 없었지만 다들 맷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문앞에서 늘 키스를 했었으니까 보지 않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저한테는 너무 어려운 호칭이에요, 라일리 부인. 피터라고 불러주세요.”

피터는 애써 입가에 웃음을 띠고 라일리 부인에게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메이 숙모와 자라온 시간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메이의 뺨에 키스를 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라고 부르며 장난스럽게 웃어넘기는 것은 피터의 특기였다. 그 특기는 스파이더맨 일로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져 메이의 신경이 날카로워졌을 때, 몇 번이고 피터를 구해주었다.

갓 구운 사과파이의 향기가 피터의 후각을 자극하고, 부인은 자연스럽게 요즘 변호사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꺼내왔다. 아마 최근에 맷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걱정이 든 모양이시라고 피터가 생각했다. 메이숙모도 그러셨지만, 삶에 능숙해진 어른들은 주변의 작은 변화도 쉽게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일로 바쁜 모양이에요. 변호사라는 게 그렇잖아요.”

피터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혼일 때 혼자 있으면 외롭잖니. 이런저런 생각도 많아지고 말이야.”

“익숙해요. 평소에도 매…매티랑 못 볼 때가 많았거든요.”

신혼부부로 보여야만 해. 피터는 그 사실을 상기하며 맷 대신 매티라는 애칭을 쓰며 과장되게 웃었고, 뒤통수를 긁적였다. 피터가 맷을 부르는 애칭은 다양하게 있었지만 그중에서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Matty. 데어데블을 부르는 애칭은 많았지만 막상 맷 머독에게 붙인 애칭은 그것뿐이었다.

“어려운 점은 없니, 피터? 가정을 꾸려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잖니.”

라일리 부인은 정말로 피터를 맹인 변호사와 갓 결혼한 아직 어린 아내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가정주부를 하고 있다는 오해도 한 스푼 얹어져 있어서 피터는 어디서부터 이것을 이야기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린 것도 아니고—피터는 엄연히 대학교도 졸업한 사회인이었다— 가정주부는 결코 아니다. 어젯밤 던져둔 슈트 장갑 따위를 주워서 가지런히 정리해둔 맷에게도 미안해질 정도였는데, 맷이 다른 사람들에게 평범한 맹인 변호사로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편견이었다. 맷은 아침마다 규칙적인 시간에 일을 나갔고, 피터는 그보다는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으로—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탓이다— 생활하고 있었다.

피터는 차마 라일리 부인에게 일로 바쁜 맹인 변호사에게 집안일을 맡겨두고, 피터 본인은 얻어먹는 처지라고 말하지 못했다. 요리가 어려우면 언제든 배우러 오라는 메이숙모처럼 친절한 부인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맷과의 부부관계까지도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피터는 사과파이가 든 접시를 받아들고 고개만 열심히 끄덕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많단다.”

부인의 인자한 미소를 보며 피터는 다시 말을 삼켜야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결혼이다. 하지만 지금 피터가 매튜와 함께 하는 이유는 메이숙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피터 파커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맷을 좋아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피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었다. 맷 머독은 피터가 아는 여러 사람들 중 제일 선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데어데블로도, 변호사로도 누군가를 돕고 있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두려움에 무릎꿇지 않는 그런 사람을 어느 누가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랑은 무언가 다른 걸까. 피터는 라일리 부인의 말에 가슴 한 구석이 바늘에 찔린 듯 아파졌다.

부인이 걱정을 늘어놓고 돌아가고, 피터에게는 갓 구워져서 이제는 조금 식어 있는 사과파이만이 남아 있었다.

 


 

“경찰에게 숨겨진 증거품을 내놓으라 협박해보는 건 어때?”

며칠내내 이어진 야근에 다크써클이 심각하게 내려온 포기가 외쳤다. 커피로도 해결되지 않는 피곤은 포기를 드디어 맷과 같은 충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수염이 거뭇거뭇 올라온 턱을 매만지며 맷도 피곤이 가득한 숨을 내뱉었다. 정말 누구를 두들겨 패서라도 증거품을 얻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진작에 했을 거야, 포기…“

맷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꼬마가 스스로 자백만 안했다면 말이야.“

“그래, 그렇겠지. 맷 너라면 못참고 당장 가서 멱살을 쥐고 흔들었을 텐데!”

이마를 치며 포기가 탄식했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맷과 포기를 지옥 같은 야근의 늪으로 몰아놓고 있었다. 사라진 귀금품과 갑작스럽게 자백을 해버린 어린 피고인은 결국 넬슨앤머독에게 끊임없는 업무를 쏟아주었다. 적어도 귀금품을 찾아낸다면 검사의 터무니 없는 구형도 낮출 수 있거니와 그저 망만 보았다는 혐의로 적당한 소년범으로 보호관찰만 선고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변호사를 믿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던 아이가 갑작스럽게 본인이 귀금속 가게 안에서 훔치는 일까지 담당했다고 외쳐버렸다. 뭔가 꺼림직한 경찰의 태도와 검사의 당당함, 그리고 머뭇거리는 의뢰인의 숨소리에서 맷은 이 사건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날 부두에서 멍청한 경찰들을 제대로 쫓아갈 수만 있었다면 이 사건 하나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맷은 후회하는 대신에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여 아직 어린 소년의 죄를 덜어줄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맷, 자네 말대로 요즘 강도가 많이 늘었다고 하더군.

변호사보다는 경찰과 친한 신문기자 유릭이 맷에게 알려준 정보는 결국 의뢰인이자 피고인인 아이가 그저 휘말렸을지도 모른다는 맷의 의심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늘어난 강도 사건에 바빠진 경찰들, 사건에 비해 체포되는 이들의 수는 현저히 적었다. 범인 잡이에 목을 메는 경찰과 검사들이 아이에게 강제적으로 자백을 받아냈을 가능성, 그리고 혹은 관련된 누군가가 이 사건들에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맷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릭은 좀 더 알아보겠다고 했다. 맷은 부두 근처에서 갑작스럽게 일렉트로를 만났던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일렉트로는 스파이더맨이 제 담당이라 외치는 빌런이었고, 주로 활동하는 곳은 부두가 아니라 빌딩이 많은 도심이었다. 어쩐지 모든 것이 꺼림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저 타고난 불안감일지도 모른다고 맷은 애써 생각했다.

“오늘은 꼭 퇴근해야겠어…. 이러다가 우리가 죽을 거 같아.”

포기가 하품을 길게 하며 말했다. 맷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끝으로는 오늘자로 발행된 신문을 살펴보았다. 강도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신문 거의 뒷장에 아주 짧은 문장 몇 개로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사건사고가 많고, 빌런이 넘치는 뉴욕에서 귀금품 강도는 너무도 흔한 것이었다. 언제나 신문 1면은 유명 히어로나 빌런들이 자리잡았다. 상점이나 귀금품 가게의 강도 따위는 빌런 취급도 받지 못했다.

똑똑—

넬슨앤머독 사무실의 출입문 앞에서 가벼운 노크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심박과 체취. 신문을 살피던 맷은 갑자기 찾아온 손님의 정체를 사무실 방안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피터였다.

“어… 들어가도 되나요?”

입구에 아무도 없어서인지 어색하게 있던 피터가 맷의 개인 사무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 포기가 소파에서 일어나 무슨 일로 찾아왔냐며 자연스러운 손님맞이 멘트를 꺼냈고, 피터는 우물쭈물하며 책상에 앉아 있는 맷을 곁눈질했다. 고객은 아닌데. 오랜만에 보는 맷의 얼굴이 확실히 피곤해보였다. 턱에는 수염이 올라왔고, 늘 깔끔하게 차려 입는 정장도 넥타이는 반쯤 풀려 있고 자켓은 의자에 걸려 있었다. 괜히 찾아왔나. 피터는 약간의 후회를 머금었다가 곧 손에 든 커피와 상자를 위로 들어올려 포기에게 보여주었다.

“간식배달이에요!”

“…배달? 맷, 네가 시켰어?”

포기가 맷을 쳐다보며 물었다. 맷은 어깨를 으쓱이며 팔짱을 끼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가 궁금해하던 ‘비즈니스-맨’이야, 포기.”

향긋한 커피냄새와 함께 상자 안에서는 사과와 설탕, 밀가루 냄새 따위가 풍겼다. 사과파이였다. 포기가 당황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심박이 빨라졌고, 피터는 여전히 눈치를 보다가 소파 앞 테이블에 가져온 커피와 사과파이를 내려두었다. 생각보다 더 어리잖아. 포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을 맷은 알 수 있었다. 맹인이지만 감각이 뛰어난 매튜는 이럴 때만큼은 포기의 표정을 못보는 것에 깊이 감사했다. 보지 않아도 포기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피터가 그렇게 어리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맷은 변명을 삼키고 의자에서 일어나 어색하게 서 있는 피터를 소파에 앉히고 본인도 그 옆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포기의 뜨거운 눈초리를 애써 모른 체했다. 며칠만에 마주한 피터에게서는 우유과 설탕냄새가 나서, 맷은 피터의 아침이 시리얼이었음을 쉽게 알아차렸다. 밥값이라도 테이블에 올려두고 나올 걸 그랬나. 새벽에 급하게 집에서 옷을 챙겨나오느라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쩐 일이야, 피터?”

피터의 옆자리에 앉은 맷이 차분하게 물었다. 피터는 마주앉은 포기의 시선이 어색한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아래층에 라일리 부인이 파이를 주셨는데—, 혼자 먹을 순 없잖아요!”

“잘 됐다. 아까부터 단 게 필요하다고 말했잖아, 포기.”

맷이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포기를 향해 고개를 움직였다. 팔짱을 끼고 맷과 피터를 마주한 포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내 피터의 얼굴을 보고, 결국 표정을 풀 수 밖에 없었다. 맷을 혼내고 싶은 것이지 피터를 탓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맷이 말한 ‘스파이더맨의 비즈니스 파트너 보호’가 이렇게 오래까지 이어지고 있을 줄은 포기도 몰랐기에 오랜 친구에게 한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상자에서 사과파이를 꺼내고 커피를 건네는 피터에게 차마 맷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냐고 묻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피곤은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를 띤 맷의 뻔뻔스러운 낯짝을 보며 포기는 애써 깊은 한숨을 내뱉어 제 감정을 정리했다. 소파에 나란히 붙어앉은 맷과 피터는 포기가 보기에도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누가 보면 몇 년은 지낸 연인인 줄 알겠다. 그럴리 없겠지만. 맷의 연애사를 아는 포기는 그럴리 없다며 제 생각을 부정하고, 피터에게 자연스럽게 농담 섞인 대화를 건넸다. 데어데블의 절친도 그랬지만, 스파이더맨의 비즈니스 파트너도 참 고생이다. 포기는 예민한 맷과 함께 살며 어디에 투정도 못했을 피터가 안쓰러워졌다. 스파이더맨 때문에 국외추방까지 당할 뻔한데다가, 맷이랑 살고 있으니 답답할지도 몰랐다.

“혹시나 맷이 고생시키면 말해. 고소해줄테니까.”

두 사람의 결혼사실을 전혀 모르는 포기가 장난 섞인 농담을 던졌다. 잠시 눈을 끔뻑이며 맷을 힐끗 쳐다본 피터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왜 다들 오해하는 거지. 오히려 고생하는 건 맷이라고 말할까 고민하며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는데 맷의 손이 피터의 허벅지 위에 툭 올려졌다.

“그냥 고객이라니까.”

맷이 포기에게 대꾸했다. 허벅지에 올려진 손이 따뜻했지만 피터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라일리 부인의 사과파이는 달콤하고, 커피와 잘 어울린다. 오랜만에 맷이랑 나란히 앉아 있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왜 갑자기 가슴이 쿡쿡 찔려오는지 피터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ne님이 그려주신 맷피터가 너무나 귀엽기 때문에... 귀여워요,, 세상에 알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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