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위장결혼 - 02
🕶x🕷/소설
2025. 6. 3. 18:02
- 제목미정
- ne님이 말씀해주신 위장결혼 맷피터 설정에 감명을 받아..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면접이 있어요!”
피터가 쾌활하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 아직 남아 있는 잠을 몰아내던 매튜는 코끝을 간질이는 커피 향기에 눈을 끔뻑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피터, 너무 세게 뛰어다니지마. 머리가 울려.“
벌써 며칠째 이어진 아침의 패턴이었다. 잠이 많을 거라 생각했던 매튜의 예상과 달리 피터는 며칠 내내 몇 시간은 일찍 깨어나 ―새벽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슈트를 입은 채 커피까지 내려두고 있었다. 오늘도 벌써 맷의 몫까지 커피를 따라둔 피터는 뜨거운 김이 나는 잔을 후후 불며 오늘 있을 면접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일주일간 갇혀 있던 동안 잘려버린 일자리보다 조금 더 나은 조건의 실험실이라고 말하는 피터의 말을 들으며, 맷은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피터의 커피는 언제나 그렇듯 형편없었다.
피터와의 동거는 그다지 어려운 업무가 아니다. 어차피 혼자 쓰던 집에 생필품이 3배 정도 더 필요하게 되었다는 정도가 달라진 전부라고 맷은 생각했다. 이전부터 피터는 자주 맷의 집에 찾아와 멋대로 냉장고를 열어보곤 했고, 거기에 이제 잠까지 같이 잘 뿐이다. 월세방까지 빼버린 피터는 이제 완전히 맷의 집에 들어온 상태였고, 맷은 쓰지 않는 방에 피터가 필요한 책상이나 책장 따위를 사둘 생각을 했다. 거미줄 용액을 만들 곳이 필요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피터의 짐이 아무리 적다지만 둘 곳은 제공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위장결혼이라지만 법적으로는 혼인한 사이가 된 거니까. 피터가 집에서 어색하게 눈치를 보게 두는 건― 다행히 이제 처음보다는 덜했다― 맷도 불편했다.
문제는 종종 만나는 아래층의 이웃이나 집 주변을 살펴보는 수상한 이들이었다.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고 소문을 엿듣는 이들의 존재를 맷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매튜의 향상된 감각은 피터의 탄맛이 나는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아래층에서 피터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스파이더맨에 대한 악감정에 더해져서, 피터 파커에 대한 의심, 그리고 갑작스럽게 피터의 신원을 보증해 준 법적인 남편의 존재로 잔뜩 약이 오른 게 분명하다. 맷은 입안에 남는 쓴맛에 미간을 찌푸리다가 활기찬 피터의 목소리에 곧 표정을 풀었다. 어차피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계속 감시만 하는 모양이니까. 가짜 부부라는 것이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다.
“그럼 우리 저녁에 보는 거예요?”
거미줄 가방 대신에 일반적인 배낭을 챙긴 피터가 맷에게 바짝 다가와 물었다. 맷은 컵은 들지 않은 손을 피터의 어깨를 얹었다. 오래전 구입한듯한 낡은 정장, 그리고 슈트는 그 옷 안쪽으로 숨겨져 있다. 피터가 입은 옷의 감촉으로 피터가 낡은 양장을 챙겨 입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면접을 위한 것이기도 했고, 문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유이기도 했다. 평범하게 나가려면 평범한 옷을 입어야 하니까. 맷의 집에 들어온 뒤로 피터는 창문 대신 문을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응. 거미가 너무 멀리까지 가지만 않는다면.”
“DD가 구역이 너무 좁은 거라니까요.”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탓하는 말에 피터가 짧게 신음하며 투덜거렸다. 맷은 그 투덜거림을 웃음으로 넘기며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둔 뒤, 피터의 비뚤어진 넥타이를 고쳐주었다.
“뭐…, 노력은 해볼게요.”
확답은 주지 않은 피터가 냉큼 현관으로 향하고, 맷도 케인을 챙겨 따라나섰다.
어려 보이는데. 갑작스럽게 맹인의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상대를 궁금해하는 이웃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 느껴졌다. 맷은 피터의 나이가 이제 스물이 넘어 서른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상기했다. 하는 행동을 보면 확실히 나이에 비해 어려보일지도.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에도 이웃들의 작은 말소리나 건물 주변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매튜의 귀를 간질이고 있었다. 현관문 밖으로 나온 피터는 저녁에 할 일 대신에 당장 앞두고 있는 면접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마스크 이야기는 계단이나 현관문 밖에서는 하지 않을 것. 맷과 피터가 부부로 살기로 시작하며 처음 정한 규칙이었다.
아파트 계단을 모두 내려와 문을 나서기 전, 피터가 어색하게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맷에게 몸을 돌렸다. 피터가 문을 사용하는 동안 생겨난 규칙 중 하나를 할 타이밍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떠들던 피터는 곧 사형을 앞둔 죄수라도 된 것처럼 쭈뼛거리며 맷의 앞에서 굳어 있었다.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해야만 하는 상황이 피터에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하며 눈치를 보는 피터를 앞에 둔 맷은 피터의 턱 언저리를 가볍게 붙잡고 엄지로 입술을 찾는 체를 하며 타이밍을 쟀다. 피터의 긴장된 숨이 매튜의 손끝을 간지럽히고 흩어지고 혈류가 빨라지며 심장 소리가 커졌다. 원래도 운동선수처럼 크고 또렷한 피터의 심박이 이 순간에는 손에 잡힐듯 더욱 분명해져서, 조금 놀리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맷은 피터의 입가를 매만지던 엄지를 치우고 그 위에 제 입술을 얹었다.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고 혀를 움직이자 피터의 몸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맷을 따라 어색하게나마 입술을 핥는 피터의 움직임에 맷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맷은 피터가 부드러운 키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버드키스는 가벼운 아침인사였다.
“면접, 잘 됐으면 좋겠네.”
머금고 있던 피터의 입술에서 입을 뗀 맷이 피터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톡 쳤다. 조금 열이 오른 피터의 얼굴이 손가락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재밌었다. 키스에 잠깐 열이 올라 멍하니 맷을 쳐다보던 피터는 곧 번뜩 정신을 차리고, 늦었다며 도보로 달려갔다.
“맷—! 이따 봐요!”
맹인에게 손을 흔들 필요가 없는 것을 잊은 모양이었다. 맷은 일부러 피터가 서 있는 방향과는 조금 어긋난 곳을 향해 손짓을 하고 피터가 향하는 방향과 반대로 걸었다. 맷의 사무실은 걸어서 20여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피터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러가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 급하게 걸어가느라 어긋나는 피터의 발소리를, 점점 멀어짐에도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음을 들으며 맷이 생각했다. 어쩐지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도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포기와 함께 운영하는 넬슨 앤 머독 변호사 사무실에는 일거리가 간간히, 다행이도 끊이지 않고 있는 편이었다. 사정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가급적 적은 금액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제대로 뜯어먹자는 게 사무실을 처음 열 때의 마음가짐이었고 맷과 포기는 그 신념에 따라 돈이 되지 않을 사건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집주인과 문제가 생겨서 제대로 된 비용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이웃도 맷과 포기가 다루는 사건들 중 일부였다. 손끝으로 정리된 내용을 읽어내려가며 맷은 고객과 만나기 위해 일정을 조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하면 집주인도 있을 시간대에 집에서 만나는 게 좋을 것이다. 동거를 결정하며 피터가 걱정했던 월세방 문제가 단 30분만에 해결되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번 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 싶었다.
개인 사무실에 앉아 손가락을 더듬어 다른 서류들도 살펴보던 맷은 제 방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문쪽으로 돌렸다. 피터와 다르게 묵직하고 느긋한 걸음. 거의 매일 같이 듣는 걸음소리였다.
“그래서 ‘비즈니스-맨’은 어때?”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온 포기가 물었다. 검지와 중지를 들어 양손에 따옴표를 만들어내는 흉내를 내는 모양이다. 맷의 손가락은 여전히 종이 위를 더듬어 잉크로 인쇄된 글자들을 찬찬히 읽어내렸다.
”별 거 없어.“
”별 게 없기는. 며칠째 기분이 좋아보이는데.”
“비슷한데. 포기, 이 건은 경찰서에 다녀와야겠어.”
“…설마 고객이랑 잔 건 아니지? 아, 아니다. 말하지마!“
포기가 놀란 체를 하며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아니라니까. 맷은 손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맷의 집에 들어와 있는 상대를 알고 있는 포기는 재미난 놀림감이라도 생긴 것처럼 며칠째 맷에게 관계의 진행 정도를 장난스레 묻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냥 고객이야.”
맷이 단언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거리 동료이자 친구였지만,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피터가 체포당해 붙잡혀 있는 동안 도우러 나섰던 맷은 사무실을 함께 운영하는 동업자에게 자리를 비우는 이유를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전에도 마음대로 사건을 받아 재판에 출석하느라, 그 사건을 포기가 함께 검토해주느라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던터라 솔직히 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앞의 그 사건의 당사자도 스파이더맨이었다.
살해범 누명이나 건물 훼손 따위의 죄명으로 붙잡힌 스파이더맨의 마스크를 지키기 위해서 맷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피터는 모르는 게 분명하다. 그뒤에도 작은 사건을 몇 가지 가져오던 조심성 없는 거미는 이번에는 마스크 아래의 사람의 문제까지 맷에게 가져오고 말았다.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지키기 위해서, 피터 파커의 시민권이 위협받는 상황은 변호사 생활을 10년이 넘도록 하고 있는 맷에게도 참으로 당황스러운 케이스였다. 피터는 언제나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차라리 정식 재판이라면 200만 달러, 혹은 300만 달러라도 외쳐서 피터를 상황에서 빼낼 수 있었겠지만,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사적으로 굴러가는 권력 조직에게는 그런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본인이 평생 살아온 뉴욕에서 추방 당할 위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피터는 메이는 부를 수 없다며 고집만 부렸다. 취조실에서 피터가 내려친 테이블은 다리에 금이 갔고, 그것은 아마 피터가 그곳을 나오고 얼마 안가 부서졌을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위험해. 스파이더맨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으면 추방될 위기야.
평생을 퀸즈에서 살아온 애를 쫓겨나게 둘 순 없잖아, 포기.
맷이 피터를 보호하는 동안 사무실의 일을 홀로 해내야했던 포기에게, 맷은 결국 사실을 말했다. 물론 조금 거짓말이 섞이긴 했지만. 그날 맷의 설명을 듣던 포기는 피로가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넬슨앤머독 변호사 사무실은 언제나 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누구든 ‘법적’인 가족이면 되는 거잖아?
피터 파커의 신원을 확실히 보증해주며, 그가 미국에서 살아온 시민권자인 동시에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인 가족. 맷은 포기의 말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어 곧바로 생각한 것을 실행했을 뿐이다. 메이 파커가 안된다면 새로운 가족을 만들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당장 피터와 가족이 될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맷은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미 결혼을 한 사이로 만드는 것이 조금 어렵긴 했지만 길거리 친구들의 도움으로 맷은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피터의 남편 자리에 본인의 이름을 넣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남편이 된 사람의 변호사라는 명확하고 권위적인 직업은 피터를 딱딱한 의자에서 벗어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파이더맨을 지독히 싫어하는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법적인 문제를 일으킬 각오까지는 하지 못했으리라. 맷의 예상대로 피터는 곧바로 석방되었다. 그동안에 맷은 미뤄둔 일에 파묻혀 있었다. 감시가 따라붙지만 않았다면 한동안은 그럴 예정이었다.
담담하게 할 일을 하는 맷의 태도에 포기가 탄식인지 모를 숨을 내뱉었다. 스파이더맨이 알면 화낼 거야.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이 친한 사이라는 걸 아는 포기는 벌써 몇 번이고 맷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 친절한 이웃의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전속 사진사—스파이더맨을 비난하는 뷰글에 팔아넘기는 형태였지만—를 집안에 들인다는 맷의 결정을 포기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데어데블까지 팔아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포기의 말에 맷은 피터는 그럴 애가 아니라고 옹호했다.서류상으로 결혼까지 한 상태인 것을 알면 정말로 생각이 있느냐고 화를 낼 것 같아서, 맷은 애써 그저 스파이더맨을 위해 ‘피터 파커를 보호중’이라고 변명을 했다. 혹여 나중에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포기 넬슨은 ‘맷 머독’ 대신에 ‘피터 머독’의 변호사가 되어 있을 듯하여 맷은 포기에게 피터를 소개해주는 것을 미루기로 했다.
“클라이언트를 집까지 데려와서 살겠다는 변호사는 세상에 너 뿐일 거야, 맷.”
“그래서 좋은 변호사인 거겠지.“
맷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가방에 담은 맷은 무릎까지 오는 코트를 입고, 가방을 어깨 한 쪽에 걸쳤다.
”난 경찰서에 다녀올게.”
“스파이더맨에게 비즈니스 파트너랑 키스할지도 모른다고 말해야한다니까—!”
맷의 뒤통수에 대고 포기가 소리쳤다. 포기는 아무것도 몰라. 피터가 맷의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고, 아침마다 이웃들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맷은 포기에게 말하지 않았다.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였다. 동업자이자 친한 친구라고해서 모든 사실을 공유할 이유는 없는데다가 포기가 다시금 탄식하며 스파이더맨에게 혼날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예상이 가능해서였다. 스파이더맨의 비즈니스 파트너, 피터 파커. 맷은 그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며, 이제는 서류상으로는 피터 머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피터가 본인의 서류상 결혼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경찰서 안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오늘도 어디선가 강도가 일어났던 모양이다. 거기에 소매치기도 여럿. 건물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 대부분을 들을 수 있는 맷은 경찰서 옥상에 앉아 도움되는 이야기를 찾아 감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찾아야하는 이야기는 망을 보다가 홀로 체포되어 주범으로 오해 받은 아이에 대한 정보인데, 맷은 경찰서 내부의 누군가는 진상을 알고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강도짓의 주범이 되기에는 열다섯 살은 꽤나 어린나이였고, 아이 몇몇이 모두 들고 도망갔다기에는 사라진 귀금속의 양이 많았다. 목걸이나 반지 말고도 골드바 같은 것들이 사라진 모양인데, 홀로 체포된 아이는 그 모든 것을 덤터기 쓸 위기에 있었다. 귀금속 가게에 들어간 이들은 사라지고, 망을 보던 꼬마 한 명만 체포되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맷은 경찰에서 당당히 넘겨준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는 진술서를 떠올리며 감각을 집중했다.
“—부둣가에 뒀다고?”
“그렇다니까. 팔기엔 아직 시기가 일러.”
부두라. 꽤 흥미로운 이야기여서, 맷은 대화에 집중했다.
“조용해지면 어디 팔아넘기면 큰돈이 될 거야.”
“몇 개만 미리 파는 건 어때? 프로포즈할 돈이 없단 말이야.”
“그러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뭐, 그래. 어차피 꼬마 혼자 다 뒤집어 쓸텐데 용돈이라도 줘야지.”
생각한 것보다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맷은 경찰의 퇴근 시간이 몇 시가 되는지 생각하며 주머니 속 마스크를 확인했다. 데어데블 마스크는 잊지 않고 양복 바지주머니에 잘 넣어져 있다. 손에 잡히는 탄탄한 감촉을 느끼며 맷은 잠시 다른 곳이라도 다녀와야할지 고민했다. 아직 해가 창창한 낮이니까. 이 시간에 무단으로 퇴근을 해서 장물을 확인하러 가는 멍청한 범죄자는 없을 것이다.
프로포즈
옥상에 앉아 시간을 떼울 방법을 고민하던 맷의 머릿속에 문뜩 대화에서 건져올린 단어가 떠올랐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대부분 프로포즈를 하곤 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약속된 일종의 결혼 절차였다. 나랑 결혼해줄래? 뻔한 말을 하며 준비한 선물과 반지를 건네는 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결혼의 시작이었다. 위장결혼이긴 했지만, 부부인데 반지 하나 없이 다닌다는 건 조금 이상하게 보일까. 시각을 잃은 뒤로 촉감에 예민해진 맷은 정장이나 코트에 돈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재질의 양장을 무리해서 사기도 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반짝이는 걸 좋아하기도 하니까, 반지가 눈에 띄게 보일지도 모른다.
맷은 기다리는 시간동안 잠깐 경찰서 옥상에서 내려와 평소 갈 일 없던 귀금속 가게에 들렀다. 친절한 매장직원은 지팡이를 든 맹인의 등장에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인기 있는 제품이에요. 맷에게는 그저 딱딱하고 매끈한, 그리고 큐빅이 붙어 있는 동그란 물체로 느껴질 뿐이었다. 과한 친절은 언제나 이유가 있는 법이다.
“파트너가 이걸 좋아할까 모르겠군요. 보다시피 제가 보이지 않아서요.”
맷은 가짜 보석이 붙어 있는 반지를 손끝으로 만져보며 곧 결혼을 앞둔 새 신랑인 체를 했다. 점원은 다이아몬드를 싫어할 여성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누구든 정말 좋아할 거라는 목소리는 높고 과장되어 있었고, 거기엔 곧 들어올 눈먼 돈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다이아라 주장하는 큐빅은 피터가 손가락을 까딱이면 뭉개질 듯한 물질로 이루어진 덩어리에 불과한 듯했다. 스파이더맨이 하루만에 부숴먹을 것 같은데. 맷은 파트너와 함께 오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큐빅 반지를 내려두고 가게를 나섰다. 시각장애인에게 가짜 보석을 파는 가게, 곧 형사가 찾아올지도 모르지. 맷은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다른 가게를 찾아나섰다. 정직하게 반지를 추천해줄만한 사람이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았다.
피터의 손가락이 어느 정도 사이즈였지. 장갑을 낀 채로 맞잡았던 손을 —대체로 활동 중에 서로를 구해줄 때였다— 떠올리며 맷은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지팡이를 짚은 시각장애인을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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