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위장결혼 - 14

🕶x🕷/소설

2025. 7. 16. 16:06

 

FBI요원이 알려준 장소는 폐컨테이너 따위가 얹어져 있는 인적이 드문 부두였다. 종종 그 근방의 순찰을 다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속상해진 피터는 작은 한숨을 푹푹 쉬며 허리에 있는 벨트에 소형 카메라와 웹슈터 카트리지를 챙겼다. 거기에 카메라까지 목에 메고 있으니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 사진을 찍어 뷰글에 파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던, 그리고 그렇게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시절. 히어로 활동과 기자 일까지 하느라 바빴던 대학생 파커는 제게 주어진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느라,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사람들을 구하고, 오해를 받고, 사진을 팔고, 다시 오해가 커지고, 그럼에도 다시 돈을 위해 사진을 팔았다. 그리고 지금도 피터의 일상을 유지하고자, 범죄 증거를 찍어 요원에게 팔고자 하는 것이니 어릴 적과 무엇하나 달라진 게 없는 듯했지만, 그래도 달라진 점이 있기는 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피터, 준비됐어?”

침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맷이 노크를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어차피 맷의 집이고, 가구도 모두 맷이 사준 것인데 언제나 조심스럽게 들어주는 맷의 배려가 여전히 낯간지러운 피터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룸메이트와 함께 살 때에는 언제 문이 열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가 자주 있었는데—슈트를 입은 모습을 들킬까 걱정한 것이었지만— 맷과 함께 살고는 그렇게 예민해진 적이 없었다.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있던, 크게 다치고 있던 맷은 언제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피터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다.

데어데블 슈트 착장의 맷은 마스크를 손에 들고, 피터의 곁으로 다가왔다. 피터는 매튜의 시선이—맹인이니까 실제로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책상 위에 늘어둔 사진으로 향하는 것을, 눈을 굴려 힐끗 보았다.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게 분명해. 묻는 대신에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는 맷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피터는 결국 먼저 입을 떼고 사진을 묘사했다. 유릭과 함께 회사에 갔던 날에 찍어둔 비욘드 코퍼레이션의 시설과 약품, 가짜 다이아몬드 따위가 담긴 사진이었다. 맷이 갔을 때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고 했지만 어쨌거나 이것도 증거품이 될지 모르니 현상해 두었다는 게 피터의 설명이었다.

“FBI에게 팔기 위해서 말이지.”

맷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팔짱을 꼈다. 목소리는 어조가 없는 담담한 언제나의 데어데블 말투였는데, 표정이 영락없이 놀리는 모양새였다. 이 거래에 대해서 내심 마음이 불편했던 피터는 그 말에 다시금 양심이 쿡쿡 찔렸다. ‘판매’ 말고도 다른 괜찮은 단어를 써주면 어디 덧나는 걸까. 변호사 어법을 쓰는 맷을 째려보며 피터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냥 약간의 ‘호의’를 구하는 거라구요.”

“응, 그러니까 ‘거래’지. 스파이디 너랑은 안 어울리는 단어네.”

“맷도 데어데블의 정체를 불라며 잡혀가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잘난 체하는 표정을 보며 피터가 툴툴거리자, 그것까지도 재밌다는 듯 웃던 맷이 졌다는 뜻으로 두 손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놀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항복을 받아들인 피터가 웃음소리를 내며 맷에게 가벼운 포옹을 해오고 매튜는 그 포옹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포옹은 둘 사이의 평화 협정이었다. 얇디얇은 스판덱스 슈트를 입은 몸이 맷에게 찰싹 붙었다가 천천히 떨어지고 책상에 흩어진 사진을 모아 한쪽에 정리했다. 맷은 피터의 움직임과 근육의 탄성 따위를 감각으로 느끼며 곧 가게 될 장소를 상상하며 어떻게 침입해야 할지 따위를 생각하고 있었다. 피터의 자유를 위해서.

피터가 FBI와 멋대로 거래를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래라는 것은 제대로 된 조건이 있어야만 했는데, ‘피터 파커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이미 처음부터 잘못된 억지스러운 체포였으므로 해당할 수 없다. 피터에겐 어떤 혐의도 증거도 없거니와, 스파이더맨은 정체를 비밀로 하는 불법 자경단원 중 대표적인 인물이긴 했지만, 그런 취급을 받을 법적인 문제에 엮여 있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일은 맷이 이미 해결해 주었으니까. 그런 터무니 없는 조건에 제멋대로 증거까지 주기로 한 거래가 맷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그 요원을 찾아가 서로 공평한 테이블에서, 추가적인 범죄자 체포에 대한 문제 해결이나 피터 머독에 대한 보상을 조건으로 걸고 싶어질 따름이었다. 그것은 스파이더맨을 책임지는 변호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맷은 피터에게 협력해 주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피터의 태도와 진지한 고백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피터를 혼자 보냈다가는 다시금 그날처럼 약에 취해서 온다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결국 피터와 함께 공장을 살피는 데 동의했다. 처음에는 혼자 갈 생각까지 했지만, 피터가 화를 낼 모습이 선해서 기절시키는 선택지는 접어두었다.

당당히 고백을 해온 아내의 부탁을 모르는 체할 수는 없지.

천장으로 폴짝 튀어 올라 거꾸로 선 피터의 유쾌한 발소리를 들으며 맷이 생각했다.

 


 

혹시 이것도 가짜 정보였던 게 아닐까. 피터가 알려준 주소에서 한 블록 떨어진 건물 위에 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해당하는 위치에는 작은 컨테이너 몇 개만 쌓여 있을 뿐이어서 가짜 다이아몬드니, 마약이니 하는 것을 제조할 만한 환경으로는 보이지 않던 탓이었다. 또 이용당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득해진 피터가 미간을 찌푸리고 컨테이너 더미를 노려보는 사이에 데어데블이 건물에 가볍게 착지했다. 오늘 내기에서 이겼지만, 전혀 기쁘지 않아. 도착지가 잘못된 거잖아. 천천히 걸어오는 맷을 슬쩍 돌아본 피터는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뱉었다.

“ 속았나 봐요….”

“속아?”

맷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피터에게 다가왔다. 데어데블 마스크를 쓰고 있던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제조공장으로는 안 보이잖아요.”

맷의 옆에 붙어 서며 피터가 말했다.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기껏 맷까지 데려왔는데 FBI 요원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부두에 있는 것은 컨테이너 서너 개였고 그것도 꽤나 오랫동안 방치된 모양인지 주변이 정리되지 않은 모양새였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무엇도 없는 듯한 곳을 응시하며 피터는 맷에게 사과를 해야할지, 그도 아니면 당장이라도 정보를 준 요원을 찾아가 화를 내야 할지 고민했다. 맷이 기껏 변호사 일까지 미루고 와주었는데 이런 결과라니 스파이더맨의 어깨가 축 처졌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은데. 적어도 수십 명은 있는 것 같아.”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맷이 피터의 힘빠진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데어데블의 토닥임을 받으며, 피터는 여전히 비어 있는 곳을 다시 쳐다보고 옆에 선 맷을 다시 돌아봤다. 농담이라도 하는 걸까 싶었으나 피터가 볼 수 있는 것은 맷의 조금 굳어 있는 입술뿐이었다. 수십 명이라니. 피터의 눈에는 무엇도 없는 황무지와 같은 버려진 창고 터만 보일 뿐이다. 수십 명이 몰래 숨어 있을 공간이라고는 컨테이너일 텐데, 약을 제조하는 직원보다는 인신매매를 당하는 피해자들에게 해당하는 취급이었다. 마스크를 써서 입만 보이는 맷을 빤히 응시하던 피터가 다시 입을 뗐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홉고블린은 인신매매단이 아니라구요.”

“건물 안에 있어서 그래. 안으로 들어가려면 조심해야겠는데.”

“…건물이 어딨어요?”

피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보아도 건물이라고 부를 법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버려진 컨테이너도 건물로 쓸 수는 있다지만 수십 명이 들어가기엔 비좁은 공간인 데다가, 인기척이라고는 무엇도 없었다. 비밀 땅굴이라도 파서 들어갔단 말인가. 맷의 진지한 입술을 보며 피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아까부터 무슨 말이에요, 맷?”

“너야말로 무슨 말이야, 피터.”

서로 미간을 찌푸린 채 마주본 두 사람은 다시 한 블럭 너머의 목표 지점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터의 눈에는 황량한 부두가 맷에게는 수십 명이 제각기 맡은 일을 하고 있는 큰 공장으로 느껴졌다. 사람들의 발소리와 기계음 따위가 맷의 귀를 울렸다. 거리가 있음에도 이 정도로 들린다는 것은 실제로는 소리가 상당히 크다는 뜻일 테고, 아마 합성마약 따위를 압축하는 기기의 소리일 것이라고 맷은 생각했다. 이렇게 명확한데 피터는 계속 건물 같은 것은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시각으로 보았을 때 무언가 다른 점이 있는 걸까. 피터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가는 게 나을 듯싶어서, 맷은 피터에게 더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건물 난간에 발을 딛고 거침없이 뛰어내렸다. 번화가에서 벗어난 구역은 주위 건물들이 낮은 탓에 와이어를 이용한 스윙이 녹록지 않았다. 와이어를 늘일 수 있는 높이가 한정적인 만큼 이동 거리가 짧아졌는데, 그만큼 손이 바빠졌다.

“내가 더 빠를걸요!”

빌리 클럽을 던져 와이어를 걸려고 하던 매튜가 공중에서 붙잡혔다. 접착도 되는 데다가 탄성 있는 거미줄 덕분에 와이어보다는 낮은 건물에서도 속도를 낼 수 있는 피터가 맷의 손을 잡고 웹스윙을 했다. 주택가에서는 맷도 피터도 땅을 뛰어다녀야 하는 처지였지만, 다행히 부둣가의 건물은 주택만큼 낮지는 않았다. 피터는 한 손으로 거미줄을 치며 공중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날아다녔고, 맷은 피터의 손에 제 몸을 맡겨두고 바람의 흐름을 따라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여기서 더 위로 가야 해. 건물 근처에서 피터에게 턱짓으로 위치를 가리켰다. 맷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루트를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맷의 지시를 믿고 아무것도 없는 공중으로 폴짝 뛰어오른 피터는 분명 떨어지리라 생각해 잔뜩 겁을 먹었다가, 제 발이 단단한 벽에 닿아 있음을 느끼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공터 같던 곳에 적어도 두 층은 되어 보이는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가끔 첨단 기기를 사용하는 범죄자가 써먹던 위장용 홀로그램이라는 사실을 피터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홀로그램 안으로 들어와서야 제가 발을 딛고 있는 건물이나 그 옆에 놓여 있는 컨테이너들이 보였다. 한 블럭 건너에서 봤을 때보다 더 많은 컨테이너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목적지를 잘 찾아온 거 같아. 피터가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에 먼저 출입할 만한 창문을 찾아낸 맷이 빌리 클럽을 건물 난간에 걸어 와이어에 몸을 의지해 벽에 서 있었다. 방사능 거미에게 물린 덕분에 벽에도 쉽게 설 수 있는 피터는 맷의 곁에서 벽에 발을 붙였다. 여기로 들어가면 되겠어. 맷이 작게 말하며 창문 모서리를 가볍게 걷어차서 깨뜨리고 몸을 던지고, 피터도 그 뒤를 따라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

두 층짜리로 보였던 건물은 그저 천장이 높은 공장이었다. 맷과 피터는 천장 위에 있는 환풍기 위에 앉아 아래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전형적인 마약 공장과는 다르게 깨끗하긴 했지만, 역시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은 평소 피터가 알던 노동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험악한 아저씨들의 인상과 팔에 가득한 문신 따위가 피터의 의심에 불을 질렀다. 물론 이런 것이 편견이라는 것을 안다. 알지만— 단순히 편견에만 찌든 생각은 아니라고 피터는 변명하고 싶었다.

찰칵—

스파이더맨이 카메라를 쥐고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 렌즈로 확대하고 보니 다루고 있는 가루 따위가 확실히 보였다. 화학약품을 조합해서 작은 통에 나누어, 그것을 다시 압축 기계에 넣는 과정이다. 그 과정의 마무리에 있는 기계에서 발생하는 소음 탓에 데어데블의 청각이 고통받고 있었다. 맷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감각을 집중했다.

화학약품은 확실히 정신을 잃은 여성이 끼고 있던 가짜 다이아몬드와 같은 성분이었다. 그 성분이 확실히 무엇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약물은 아닐 것이라는 건 알았다. 반지를 가까이 두고 있던 여성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것은 합성마약의 과투약 반응과 비슷했지만, 약에 취한 피터가 맷의 사무실에서 보였던 모습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과도한 신체반응과 감각은 비슷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최음제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피터가 만졌던 가짜 다이아몬드가 다른 종류였던 걸까. 아니면 같은 약물이 신체에 따라 다른 반응을 이끌어낸 걸까. 카메라로 사진을 남기는 피터의 옆에서 데어데블이 진지한 물음에 빠졌다.

도시에 보석을 뿌리는 것은 뉴욕을 엉망으로 만들 의도보다는 돈을 위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이미 도시의 뒷세계는 윌슨 피스크가 쥐고 있었다. 그것은 뒷골목 마약 거래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른 판매처를 마련하기 위해서 보석이라는 수단을 마련했던 것이라면— 맷이 턱을 만지며 머릿속의 추측에 꼬리를 달았다.

 

소음으로 지쳐있던 맷의 귓가에 엔진음이 들려왔다. 자동차와 비슷하지만 다른 소리는 비행기에서 나는 것과 비슷했다.

“방금 들었어?”

“뭘요?”

“쉿”

옆에서 사진을 찍던 피터가 맷을 돌아보며 되물었지만, 맷은 대답도 해주지 않고 조용히 하라며 손짓하더니 다가오는 소리에만 집중했다. 뭔데요. 몇 번을 되묻는 피터의 말을 무시하며 맷은 제 감각을 키웠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소리는 어느새 공장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글라이더였다. 공장 근처를 배회하다가 착륙한 글라이더에서 내려온 인물의 발소리가 공장 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맷은 그 발소리의 주인이 홉고블린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피터가 끔찍이 싫어하는 고블린 코스튬의 빌런들은 언제나 날아다니는 탈것을 선호했다. 피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것으로 맷은 홉고블린의 모습이 피터에게도 보이고 있음을 알았다. 여기서 증거를 찾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자리를 뜰 것인가, 빌런을 잡기 위해 달려들 것인가. FBI의 요구는 증거품이었고 빌런의 체포는 없었으나, 결국 이 일은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의 몫이 되고 말 것임을 알고 있었다. 거래를 받아들인 피터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맷은 생각했다. 거미줄로 카메라를 자리에 고정해 둔 피터는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스크를 쓴 자경단의 법칙은 언제나 그런 법이었다.

“이 정도 생산량으로 언제 뉴욕을 덮겠어!!”

잔뜩 성질이 나 있는 홉고블린이 마스크를 쓴 채 소리치며 화를 냈다. 회사 빌딩이 통제 상태가 되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맷은 그 고블린 마스크라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알지 못했지만, 피터는 그것이 영화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외계인을 닮았다고 설명해 주곤 했다. 그래도 무서운가보다. 상사의 윽박에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남성의 심박을 들으며 태연하게 생각하던 맷은 곧 홉고블린의 근육이 움직이는 소리와 휘둘러지는 방향을 눈치채고, 빌리 클럽을 손에 쥐었다. 남성을 던져버리는 몸놀림은 가벼운 처벌도 아니었고,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죽거나 크게 다칠 거야. 피터도 맷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빠르게 아래로 몸을 던져 거미줄을 쏘았고, 맷은 그 사이에 빌리 클럽을 홉고블린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강한 탄성을 가진 거미줄이 늘어나며 던져진 충격을 흡수해 주었다. 생산량을 맞추지 못한 불쌍한 노동자—마약 생산직인 데다가, 곧 교도소에 가겠지만—는 비록 몸이 거미줄에 붙었지만, 안전히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맷이 던진 빌리 클럽은 홉고블린의 머리를 두드리지 못하고 바닥과 충돌해서 다시 벽에 부딪혔다가 데어데블의 손에 돌아왔다. 데어데블의 곤봉 묘기는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다.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빌리 클럽을 보고 작게 감탄을 한 피터는 이내 정신을 번뜩 차리고 홉고블린을 맹렬히 노려봤다. 마스크를 쓴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상대는 지독하게 웃고 있을 듯했다. 고블린 마스크를 쓴 녀석들은 기존의 빌런과는 달라서, 정상적인 사고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녕, Gobby. 우리 오랜만에 본다, 그치?”

“Spider-Man….”

홉고블린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마스크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언제나 기계를 거쳐와서 딱딱하고 갈라진 사악한 음성이 되었는데, 결국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인간이다. 피터는 그 사실을 인지하며 곁에 선 데어데블을 힐끗 보고, 다시 입을 뗐다.

“너도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것 같아서 나도 친구를 데려왔지.”

“소개가 늦잖아, 스파이디.”

맷이 장난스레 미소를 지으며 곤봉을 양손에 쥐고 폼을 잡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대치 상황은 길거리 자경단에게는 언제나 익숙한 일이다. 문제는 공장이 시끄럽고, 일하던 마약사범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서 있다는 거지만. 차라리 도망가 주길 바랐는데 홉고블린에게 무참히 던져지는 책임자를 보고도 다들 여전히 일할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홉고블린에 더해서 수십 명의 범죄자와 싸워야 할 판이다.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쓰고 있던 덕분에 힘빠진 표정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피터는 생각했다. 공장에 있는 모두가 범죄자라니, 벌써부터 거미줄을 칠 생각에 손가락이 쑤셨다. 그 마음은 맷도 마찬가지여서 빌리 클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긴 대치에 신호탄을 울린 것은 언제나 빌런이다. 다가오는 글라이더를 알아차린 맷이 먼저 옆으로 움직이고, 스파이더센스에 반응한 피터가 뒤늦게 공중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공장 문을 거칠게 부수며 들어온 글라이더는 데어데블과 스파이더맨이 서 있던 자리를 가차 없이 훑고는 제 주인의 곁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홉고블린이 익숙하게 글라이더에 올랐다. 달려드는 범죄자들을 피하며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쳐 그들을 묶어두는 동안, 데어데블이 발과 주먹으로 범죄자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Web-head, 증거품은 부수면 안 돼!”

공장 기계를 번쩍 떼어내 공장 위를 날아다니는 홉고블린을 후려치고 싶다는, 피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맷이 소리쳤다.

“…그런 짓 안 해요!”

뒤늦게 변명하듯 소리친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천장에 붙여 자신에게 달려드는 공장 직원들을 피해 위로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손을 뻗고 있는 데어데블도 챙겨 올려주면서도 맷과 피터의 의식은 홉고블린을 향해 있었다. 글라이더는 유유히 공장 위를 배회하며 엉망진창인 싸움을 구경하는 모양새였다.

“던져 줘.”

“무슨 소리예요, DD!”

“날 믿어, 스파이더맨!”

데어데블이 소리쳤다. 손을 붙잡고 매달려 있는 맷을 힐끗 내려다본 피터는 입술을 꾹 깨물고 팔에 힘을 주었다. 자동차도 들어 올릴 힘을 갖고 있는 스파이더맨에게 데어데블을 던지기는 무엇보다 쉬운 일이다. 홉고블린이 타고 있는 글라이더를 향해 던져진 맷은 홉고블린에게 던져졌던 남성과 달리 익숙한 몸놀림으로 유연하게 날아올랐다. 두려움이 없는 남자. 피터는 악마의 작은 별명을 떠올리며 마스크 아래로 미소를 지었다. 날아간 맷의 발이 정확하게 홉고블린의 명치에 부딪히더니 글라이더가 흔들리고, 곧 맷과 홉고블린이 함께 글라이더 아래로 떨어졌다.

“그물!”

“네네, 알겠다구요!”

맷이 명령하듯 소리치고, 피터가 냉큼 데어데블이 떨어질 자리에 거미줄을 쳐서 그를 받아주었다. 비록 홉고블린은 바닥에 세게 부딪혔지만 말이다. 안전하게 거미줄에 떨어진 맷을 확인한 피터는 쇠 파이프 따위를 들고 덤벼드는 공장 직원들을 던져 거미줄로 정리하며 바닥에 보잘것없이 엎어진 홉고블린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쉽게 잡아버려도 되는 걸까. 거미줄로 홉고블린을 고정하기 위해 웹슈터 버튼을 누르려던 스파이더맨은 이내 제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통과도 같은 스파이더센스는 위험을 알려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어떤 위험인지는 말해주지 않아서 피터는 언제나 주위를 둘러봐야만 했다.

뭐가 문제야, 스파이더센스?

피터가 주위를 둘러보던 사이에 갑작스럽게 시야가 바뀌었다. 거미줄에서 벗어난 데어데블이 피터를 꽉 껴안고 그를 밀쳐내고 있었다. 맷? 맷에게 안긴 채 뒤로 크게 엎어진 피터가 잠시 당황하던 사이에 피터가 서 있던 자리로 글라이더가 날아들었다. 앞쪽이 뾰족한 글라이더에 등을 찔렸다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파이더센스가 여전히 따끔거렸다.

“아깝게 됐어….”

홉고블린이 중얼거렸다.

“피해!”

피터가 달라진 시야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맷이 벌떡 일어나 피터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스파이더센스가 더욱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폭탄. 피터는 곧장 몸을 움직여 맷을 붙잡고, 웹슈터로 거미줄을 천장에 붙여 위로 날아올랐다. 장난감 공처럼 생긴 폭탄이 바닥에 툭 떨어지며 폭발하며, 범죄자 몇몇이 강한 충격에 옆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공장 바닥에 불이 붙었다. 화학약품이 가득한 이런 곳은 폭발과 화재에 취약했다. 글라이더는 뜯긴 공장 문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맷과 함께 공장의 높은 천장에 붙어 다행히 다치지 않은 피터는 엉망이 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맷을 보았다. 데어데블 마스크를 쓴 탓이 굳게 다물린 입술밖에 보이지 않았다.

“피터, 넌 사람들을 챙겨. 화재 때문에 마약이 공장에 퍼질 거야. 추가 폭발이 될지도 모르고….”

“맷은요?”

“기계까지 불이 붙으면 피해가 더 커질 거야. 전원을 차단하고 올게.”

넌 위에서 사람을 구해.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입술이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하지만—. 변명할 새도 없이 붙잡고 있던 피터의 팔을 힘주어 떼어낸 맷이 자신 있게 공장 바닥으로 멋지게 착지했다. 잔불 사이를 피해 기계로 향하는 데어데블의 붉은 코스튬을 보며 피터는 천장을 빠르게 뛰어다니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범죄자들을 거미줄로 끌어당겼다. 대부분이 이미 피터의 거미줄에 감겨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 천장에서 낚시하듯 붙잡아 올리면 되는 상태였고, 피터는 부서진 창문 사이로 그들을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떨어질 지점에 친절하게 거미줄까지 붙여주면서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휙 던져버리고 싶었는데, 2층 높이에서 일반인이 떨어져 다칠 확률이 너무 높았다.

화학약품이 불길에 반응해서 펑펑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여전히 천장에 발을 붙이고 있던 피터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아까는 선명히 보였던 맷의 빨간 코스튬이 어느새 연기에 뒤덮여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내려오지 마, 스파이디! 얼른 나가!”

맷을 찾아 아래로 내려가야 할지 고민하는데 어디선가 맷의 목소리가 들려와 피터의 행동을 막았다. 나가라는 목소리가 단호하게 폭발음 사이로 울렸다. 공장에서 시작된 불길이 커지고, 내부는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가!!”

맷의 단호한 외침에 머뭇거리던 피터가 결국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소음을 내던 기계와 씨름하던 맷은 초감각으로 피터가 나간 것을 알아차리고 빌리 클럽을 손에 꽉 쥐었다. 전원 차단 버튼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버튼을 찾겠다고 피터를 아래로 내려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폭발과 화재로 약품이 이리저리 흩어진 탓에 주위의 공기는 이미 약물로 가득 차 있었다. 빠르게 휘발되는 물질은 작은 폭발에도 쉽게 공기로 스며들었고, 피터까지 휘말릴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게 맷의 판단이었다. 결국 기기의 멈춤 버튼을 찾지 못한 맷은 빌리 클럽을 쥐고, 계기판을 강하게 내리쳤다. 거친 손짓으로 시끄럽게 울리던 기계가 멈추고, 공장 안은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남았다.

이제 나가야 해.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맷은 쉽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스스로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정신이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감각이 둔해지다가도 다시 격하게 울리며 뜨거운 불길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하다가도 다시 말짱해지고, 소리가 둥둥 울렸다가도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레이더센스가 엉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맷은 제가 부순 계기판을 딛고 어떻게든 서 있었으나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윙윙거리는 소리로 청각이 엉망이 되었다. 몇 배로 강해졌다가 다시 옅어지는 감각은 맷을 엉망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냥 여기에 남아도 되지 않을까.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져서 몸을 강하게 할퀴는 감각과 걷잡을 수 없는 내면의 소용돌이가 매튜를 멈춰 세웠다. 때때로 문뜩 생겨나는, 데어데블 활동으로도 막을 수 없는 깊은 늪이 맷의 발목을 삼켰다. 그것은 맷과 오래도록 함께 해온 스스로에 대한 분노였다.

“DareDevil—!”

맷을 깨운 것은 피터의 목소리였다.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대피시키고, 다시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피터가 벽에 붙어 있었다. 맷은 고개를 들고 무작정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손을 위로 뻗었다. 피터.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다. 통제를 벗어난 몸은 감각이 붕 떠 있다가도 다시 아래로 추락했다. 피터. 위로 뻗은 맷의 손이 단단한 무언가에 붙잡히고, 곧 위로 끌어올려졌다. 얇고 작지만 동시에 강한 힘을 가진 손. 자신을 꽉 붙잡은 손에 끼워주었던 결혼반지가 느껴져서 맷이 작게 웃었다.

공장을 벗어난 것은 분명하다. 맷은 제가 어딨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제 불길 속은 아니라는 사실은 인지했다. 다가오는 몸에서는 라임 향기가 났다. 맷은 둔하고 예민해진 몸을 움직여 눈앞의 상대를 무작정 끌어안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렇게 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각이 끓어올랐다. 불 속에 화약을 들어부은 꼴이다. 맷은 점점 제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예민해진 몸은 작은 포옹에도 쉽게 터질 듯 뜨거워졌다가 다시 차가워지길 반복했다. 감각이 과하다. 맷, 잠시만요. 끊어지는 의식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매튜를 불렀다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턱이나 얼굴 부근을 만져왔다. 도와줄 사람을 불러야…. 얼굴을 매만지는 손을 잡아 그 손바닥에 길게 입을 맞췄다가 충동적으로 혀를 내밀었다. 화학물질 냄새에 섞인 짠맛.

깜빡깜빡

끊어지고 이어지길 반복하는 맷의 감각은 언제나 흥분에 약했다. 약물은 매튜의 약한 인내심을 더욱 얄팍하게 만들었다.

“피터, 싫으면 묶어버려도 돼….”

피터의 손바닥을 길게 핥으며 키스를 남긴 맷이 말했다. 가쁜 호흡으로 겨우 내뱉은 말은 다시 기억 속으로 파묻혔다.

피터는 맷을 충분히 막을 힘이 있었다. 전투 중에 다친 곳도 크게 없었던 데다가, 약기운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거미줄로 묶어두어도 되는 일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맷에게 붙잡혀 잠시 당황하며 굳어 있던 피터는 고민하다가 손을 뻗어 데어데블의 마스크를 벗겨냈다. 더욱 흐릿해져서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는 붉은 머리카락, 잔뜩 붉어진 뺨과 가빠진 호흡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한 차례 경험해 본 피터는 그것이 약물에 의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왜 다른 사람들은 괜찮았는지 알 수 없지만, 맷은 명백하게 그날의 피터와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할 일은 비슷하다.

“책임…져줄게요.“

꿈처럼 흐릿해진 그날의 기억을 향해 피터가 손을 뻗었다.

 

'🕶x🕷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맷피터] 위장결혼 - 16  (0) 2025.07.27
[맷피터] 위장결혼 - 15 🔞  (0) 2025.07.19
[맷피터] 위장결혼 - 13  (0) 2025.07.11
[맷피터] 위장결혼 - 12  (0) 2025.07.05
[맷피터] 위장결혼 - 11  (0) 2025.06.28
2025.01.13
myo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