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위장결혼 - 12

🕶x🕷/소설

2025. 7. 5. 17:50

 

맷에게 병원은 익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소독약과 약물의 싸늘한 냄새, 사람들의 호흡과 울음 같은 다양한 것들이 감각을 뒤섞어서 그 안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은 큰 인내심이 있어야 했다. 어릴 적 사고로 병원에 있었던 때에는 캄캄해진 눈앞과 갑작스럽게 생겨난 능력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한참을 침대에서 사경을 헤맸다. 의식을 찾자마자 몰려드는 감각들이 온몸을 할퀴고 병원 곳곳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고막이 터질 듯 울렸다. 아주 작은 온기도 뜨겁게 느껴지고, 세상은 불처럼 타올라서 무엇보다 두려운 것으로 인식되었다. 아버지의 말소리도 너무 크게 들려서 모든 것이 날카롭고 따가웠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맷은 병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리를 떠날 수 없어. 구급차를 뒤늦게 쫓아 옷을 갈아입고 들어선 맷은 연락을 받고 다급하게 달려온 남편을 연기했다. 제가 남편입니다.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피터의 심장 소리를 쫓았다. 의식이 없는 피터가 해야 할 검사와 절차가 맷에게 안내되었고, 맷은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한 곳에 사인을 하고 자리를 지켰다. 온몸이 지지대와 붕대 따위로 감싸지는 동안에도 피터의 의식은 제자리에 있었다. 온몸이 깁스투성이인 피터는 손가락 정도만 붕대 사이로 빼꼼히 나와 있었다. 나중에 깨어나면 불편하다고 투정을 부릴 피터가 상상이 되어서 붕대 위를 슬며시 쓸어보던 맷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얌전히 앉아 있었다. 당장 맷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피터는 맷 자네가 데어데블인 걸…. 아니, 아니야. 피터가 깨어나면 연락해 주게.”

무언가 묻고 싶은 게 많은 듯했던 유릭은 피터의 손가락을 만지고 있는 맷을 보고 입을 꾹 닫았다. 쌕쌕 숨을 내쉬는 피터의 호흡은 안정적이었고, 골절상과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맷은 피터가 곧 깨어날 것임을 알았다.

“…피터도 알고 있어요, 벤.”

맷은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다. 맷이 살아온 삶의 일부분을 이미 알고 있던 유릭이 피터를 걱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침착했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결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결혼식도 무엇도 없이 갑작스럽게 피터와 결혼했다 밝힌 맷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 때 갑작스럽게 혼인신고를 해버리고 무턱대고 제 삶에 피터를 끼워 넣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고 맷은 생각했다.

체온이 내려가서 차가운 손가락은 여전히 부드럽고 말랑하다. 피터는 다 알아요. 피터의 손가락 사이로 가볍게 손가락을 엇갈려 넣어 깍지를 만든 맷이 작게 웃어 보였다. 맷 머독의 삶에서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은 어렵다. 데어데블을 알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고 유릭도 그럴 것이었다. 게다가 벤 유릭은 피터가 어릴 적부터 데일리 뷰글을 오가는 것을 봐오던 어른이었다. 유릭에게 피터는 평범한 청년이었고, 스파이더맨이 아니었다. 포기가 피터를 스파이더맨의 사진사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피터를 걱정하는 게 당연했다.

유릭의 시선이 맷의 손에 닿았다. 피터의 손끝에 깍지를 낀 맷의 손은 거칠었고 흉터가 남아 있었다. 변호사치고는 거친 손이었다.

“피터를 잘 부탁하네.”

유릭은 그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가주었다. 피터 머독. 1인실 문 옆에 적힌 이름을 잠시 바라보던 벤 유릭이 병원 복도를 걸어 멀어지는 발소리가 맷에게는 선명히 들렸다.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이나 쏟아지는 소독약, 뾰족한 주삿바늘 같은 것들이 인내심을 찔러왔다. 견뎌야 해. 맷은 옅게 흩어지는 피터의 숨결과 알코올과 섞인 피터의 체향으로 관심을 돌렸다. 심장이 빠르게 펌프질하며 필요한 곳에 혈액을 옮기는 소리, 부러진 뼈가 다시 맞물리며 천천히 접합되는 신체의 신호들이 맷에게는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걱정은 되지 않는다. 피터에게 이런 상처는 흔했고, 이 상태로 움직여서 빌런을 잡으러 가는 경우도 많았다. 맷의 집을 멋대로 이용하던 피터는 진통제만 깔끔히 비워두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맷을 반겼다. 맷은 금방 나을 거라며 웃는 피터를 몸을 만져보고 큰 상처를 점검하거나 빠진 어깨를 맞춰주곤 했었다. 좀 상냥하게 해줘요, 맷! 상처를 달고 온 주제에 아프다며 투정을 부리는 피터가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조용한 것보단 그 편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은 시끄럽지만, 너무도 조용했다.

맷은 피터가 누워 있는 침대에 적힌 이름을 손가락으로 잠시 만져보다가 간이의자에 앉아 기도했다. 아주 오래전, 병실에 있던 맷에게 그러했던 누군가처럼 그렇게 했다. 1인실은 다인실보다는 견딜 만했다.

 


 

“다친 사람은 없어요?”

이틀 만에 깨어난 피터가 한 첫 마디였다. 간이의자에서 이틀을 꼬박 앉아서 피터의 곁에 있던 맷이 들은 첫 마디이기도 했다. 온몸이 돌돌 감겨서 움직이지 못하는 피터는 눈을 끔뻑거리며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다가 곧 맷과 눈이 마주쳤다. 맷이 보는 게 아니니까 정확히는 맷의 색안경을 발견한 것이지만. 잘 잤어, 피터? 피터가 깨어날 것은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맷은 언제나처럼 차분히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에 피터가 내민 답이 이거였다. 맷은 그 허탈한 물음에 긴 한숨을 푹 쉬었다가 피터의 코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붕대에 묶인 팔다리 때문에 맷의 손을 붙잡지 못하는 피터는 그저 버둥거리며 맷을 쳐다볼 뿐이었다.

“다친 사람은 너뿐이야, 피터.”

“유릭—, 유릭 씨는요? 같이 있었는데…!”

“안전해. 너밖에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다행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주제에 남들부터 걱정하는 피터의 태도가 어이가 없지만 피터다웠다. 피터가 부러졌던 팔다리에 감긴 붕대와 지지대가 불편하다며 우는소리를 하는 동안 맷은 호출 버튼을 눌렀다. 시각장애인 보호자를 위해서 간호사가 몇 번이고 알려주었던 버튼이었다. 혹시 누르지 못한다면 소리를 쳐도 좋다고 말하는 친절한 이에게 맷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피터의 곁에 앉아 있었다. 병실을 떠나지 않는 맷을 의사도 피터는 곧 깨어날 것이라며 위로해 주었다. 다친 아내를 간호하는 맹인 남편. 맷은 피터가 조용하던 이틀간 병실을 힐끔 보고 지나가는 이들의 수다 주제가 되어 있었다.

깨어난 피터에게 남은 상처는 멍이나 뼈에 남은 작은 금 정도였지만 퇴원은 쉽게 선고되지 못했다. 골절과 내상이 심각했던 환자가 며칠만에 나아서 걸어서 퇴원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수준이었고, 회복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한다는 선고에 피터가 침대에 뒹굴며 우는 소리를 냈다.

“이렇게 멀쩡한데…!”

“보통은 멀쩡할 수 없는 정도니까. 네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야.”

맷이 피터가 누워 있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피터는 일어나자마자 나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병원에서 그것은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유릭에게도 민폐일 것이라는 맷의 말에 피터는 꼼짝없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병원비를 데일리 뷰글에서 지불할 것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긴 했지만, 일주일은 피터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가짜 다이아몬드가 팔려나갈 텐데.

“걱정하지 마. 네가 쉬는 동안은 괜찮을 거야, 피터.”

친구들에게 부탁했거든. 피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맷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어데블을 돕는 자경단원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아는 피터는 왜 스파이더맨에겐 그런 친구가 없는 거냐며 장난 섞인 투정을 시작했다. 어벤저스에게 길바닥 다이아몬드를 주워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마법으로 가짜 다이아몬드를 모아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피터는 제 친구 목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튜는 누군가에게 부탁할 바에는 혼자서 어떻게든 해내는 피터의 고집스러운 성격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 검진을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오는 정도이지 거의 방치나 다름없다. 멀쩡한 상태로 병실에 놓인 피터는 스파이더맨 슈트가 그리워졌다. 피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맷은 간이 의자에 앉아서 피터의 투정에 대꾸만 해줄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라이노를 던져버릴 걸 그랬어요!”

“…같이 떨어져서 병원 신세였겠지.”

“그래도 스파이더맨이 라이노를 잡았다는 기사 한 줄 정도는 됐을지도 모르잖아요!”

피터의 수다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맷은 얇은 환자복 사이로 손을 넣어 피터의 복부부터 가슴까지 가볍게 쓸어올렸다. 넉넉한 치수의 환자복이 쉽게 올라가고 피터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거미의 힘이 생기고 피터는 흉터가 남지 않았고, 작은 상처는 반나절이면 회복이 되는 체질이 되었다. 큰 상처는 며칠이 걸리지만 결국엔 나을 것이다. 갑자기 걷어진 상의에 시선을 아래로 한 피터는 제 몸에 남아 있는 상처를 보고 작게 숨을 삼켰다. 평소라면 멀끔하고 하얀 피부가 있었을 명치에는 푸른빛으로 멍이 남아 있었다. 꽤 크게 남아 있는 걸 보면 그전에는 더 심했을 게 분명했다. 라이노가 머리를 부딪혔던 자리였다. 다행인 점은 맷이 그것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대신 맷은 손바닥으로 피터의 피부를 쓸어내리며 뼈와 내상을 점검했다. 멍 위를 더듬는 손이 간지러워서 피터가 몸을 뒤척였지만 맷은 봐주는 법이 없었다. 단호하게 피터를 누르고 더듬는 맷의 손길에 피터는 그저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싸웠던 게 어제 같은데. 사뭇 진지한 얼굴로 허리를 만지고 있는 맷을 보며 피터가 생각했다. 사실 정신을 잃었으니까, 맷에게는 며칠 전일 수도 있다는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같이 아침을 먹었던 맷은 면도도 깔끔히 하고 머리 스타일도 변호사답게 단정했는데, 지금은 긴 야근을 할 때처럼 수염이 거뭇거뭇 올라와 있었다. 둘둘 말려서 구겨져 있는 셔츠 소매가 맷이 계속 병실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신호 같았다. 깔끔한 데어데블이 같은 셔츠를 며칠이나 입을 리가 없으니까. 피터는 수염이 올라온 맷의 턱에 손을 뻗었다.

“집에 가요, 맷.”

“…병원에서 자면 돼.”

“예민하잖아요. 난 멀쩡하니까 집에 가요.”

피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염이 나서 엉망인 맷의 턱을 손바닥으로 만지는 것은 꽤 재밌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병원에 온종일 있는 건 안 좋아요.”

메이 숙모가 자주 아프던 시절,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 떠올랐다. 메이가 쓰러져서 입원하는 날이 잦아서 피터는 온통 신경을 그곳에 쏟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대학교 친구들과는 일부러 벽을 치고 스파이더맨 활동에 전념하며 뷰글에 사진을 팔았고, 메이 숙모의 곁에서 자리를 지켰다. 병원과 밖을 오가느라 다른 것들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메이 마저 잃으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앞에서 몇 번이고 자책하며 앉아 있곤 했다. 피터 파커는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처지였다. 병실 안에서 묵묵히 메이 숙모가 깨어나시길 기다리며 손을 잡고, 그 긴 침묵을 견뎌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맷은 다르다. 계속 도움만 주는 맷이 함께 있을 이유는 없다. 데어데블은 언제나 옳은 일을 하며 살아왔으니까. 맷은 충분히 쉴 자격이 있었다. 게다가 변호사 일도 해야 했다. 엉망진창인 피터 머독과 달리 맷 머독은 일상과 데어데블의 삶을 잘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 맷에게 균형에 대한 조언도 구해보려 했던 적이 있던 피터는 맷이 자신 때문에 삶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맷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없었다. 

“아내를 내버려두고 도망간 남편이라고 생각할걸.”

피터의 손을 맷이 꽉 붙잡았다.

“우린 부부잖아.”

맷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피터가 이따금 울적한 기분일 때 맷은 저런 다정한 목소리로 피터를 달래주거나 안아주었다. 그 목소리에 조금 풀어지려는 마음을 피터는 애써 단단히 했다.

“어차피 우리 싸웠잖아요. 더 싸운 걸로 해요. 나 아직 화났어요.”

피터는 맷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사실 화난 것은 이미 잊혔지만, 그냥 그런 걸로 하기로 했다. 스파이더맨 활동을 멋대로 제한하려던 맷이 나빴어. 피터는 맷에게 화가 났던 이유를 상기하며 그 마음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병원에서까지 자리를 지켜준 맷에게 계속 화난 채로 있기에는 피터의 양심은 참 연약했다. 그래도 맷이 병실을 지킬 이유는 없다. 아무리 데어데블과 친한 사이이지만, 동시에 가짜 부부로 함께 있기를 택했지만 결국은 언젠가 무너질 사이였다. 겨우 서류로 만들어진 관계는 엉망진창인 피터의 삶을 맷과 함께 나눌 이유가 되지 못했다. 잠깐 도움을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로 충분하다. 피터는 맷의 가슴팍을 두 손으로 툭 밀어냈다.

“나 때문에 고생한 거 알아요. 필요하면 언제든 이혼해 줄 테니까…”

피터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까지 나와버렸다. 결혼도 겨우 언급하던 피터에게는 꽤 큰 발전이었다.

화난 것도 아니면서. 피터의 손이 단호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맷은 피터의 화가 풀린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혼까지 언급하는 피터의 제멋대로인 태도가 맷의 인내심을 찔렀다. 병원 안을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 일어나자마자 다른 사람들 걱정까지 다 늘어놓고, 끝내는 두고 가라는 피터의 말이 짜증이 났다. 차라리 평소처럼 이것저것 멋대로 요구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동거를 시작할 때부터 어쩐지 주눅이 들어 있던 피터에게서 나온 이혼이라는 말에 맷이 한숨을 내뱉고, 피터의 손을 다시 맞잡았다.

그동안 도와준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이 뻔뻔하게 타인처럼 밀어내는 피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멋대로 집을 쓰면서 가까워졌으면서, 언제나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어서 집요하게 다가왔으면서, 중요한 순간에는 혼자 있으려고 하는 스파이더맨. 피터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제 몸을 던져 일을 해결하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맷에게 찾아오곤 했다. 그 과정부터 같이 하면 될 텐데. 맷은 몸을 앞으로 숙여 피터의 목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넉넉한 환자복은 쇄골까지 내려와 있어서 그 위로 키스 자국을 남기는 것은 간단했다. 간지러워 움찔거리는 피부 위에 입술을 꾹 누르며 천천히 올라가서, 뺨에 입맞춤을 하고, 마지막엔 입술에 길게 키스했다. 벌어진 입술을 파고들어 숨을 교환하는 사이에도 피터의 손은 맷에게 꽉 잡혀 있었다. 언제든 밀어내고 밀어낼 힘이 있지만 피터는 맷이 입안을 점령한 동안 얌전히 움직임을 받아냈다. 피터는 언제나 스킨십에 약했다.

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지고 피터가 호흡을 골랐다.

“피터, 난 널 책임지려는 거야.”

맷이 짜증 내듯 말했다. 혼인신고를 하고, 집을 나누어 쓰고, 이렇게 붙어 있는데도 피터에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게 답답했다. 붉은 자국이 남은 피터의 목에 다시 가볍게 입을 맞춘 맷이 피터의 어깨를 꾹 눌렀다. 약한 병실의 침대가 두 사람의 무게에 끼익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맷이 왜 날 책임져요. 맷의 말에 반박해야 하는데, 피터는 바로 말을 내뱉지 못하고 키스로 모자랐던 호흡을 고르며 맷을 째려봤다. 분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는데 딱딱한 것이 손가락에 걸려 있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맷의 얼굴을 쳐다보던 피터는 묵직해진 손가락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맷에게 잡혀 있던 손에 못 보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은색의 얇은 링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디자인의 반지였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 피터는 맷에게 따지는 것도 까먹고 손가락의 반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맷에게 시선을 향했다. 색안경은 쓴 탓에 맷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딱딱한 입매만 보일 뿐이여서 알 수가 없다. 결국 맷의 색안경을 벗겨내기로 하고, 손을 뻗었던 피터는 다시 맷에게 손이 잡혀버린 꼴이 되었다. 반지가 끼워진 손에 깍지를 껴오는 맷의 손을 멀뚱히 쳐다보던 피터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잔뜩 화가 나 있는 맷을 끌어당겼다. 가까이 붙은 몸이 따뜻했다.

“이거 진짜 보석이에요?”

피터의 엉뚱한 물음에 미간을 찌푸렸던 맷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설마 가짜 보석을 줬을까. 피터가 약에 취했던 날이 떠올라서,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피터의 심장 소리가 재밌어서, 아까까지 났던 화도 금방 사그라들었다.

“내가 가짜를 살 리가 없잖아.”

“와…. 데어데블에게 사기 치고 멀쩡하긴 힘들죠.”

“마음에 들어?”

“엄청나게 반짝거려요. 다들 보석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봐요.”

병실의 침대는 두 사람이 눕기에는 좁은 편이어서 서로의 다리가 엇갈려 얹어져 있었다. 맷과 마주보고 누운 피터는 반짝이는 반지를 보다가 이내 맷을 쳐다보았다. 색안경을 벗고 드러난 피곤함에 젖은 얼굴이나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를 눈에 담았다. 같은 침대를 공유하면서 자주 보았던 얼굴이었는데 꽤나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 들었다. 가까이 붙은 몸이 따뜻하다. 맷은 두근거리는 피터의 심박과 체향이 주는 익숙함이 좋아서 슬며시 눈을 감았다. 피곤한 거 맞잖아요. 침대 위에서 숨소리를 내며 잠든 맷의 얼굴을 더듬으며 피터가 소리 없이 웃었다.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으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이러고 있는 게 진짜 부부가 된 기분이어서, 피터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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