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뉴욕의 밤
🕶x🕷/소설
2025. 3. 31. 13:52
당분간 뉴욕에 없을 것 같아요.
목적지를 제대로 말해주지 않은 연인은 그렇게 또 자리를 비웠다. 아마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느 다른 공간에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튜의 예민한 감각으로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곳, 피터는 자주 그런 곳으로 사라지곤 했다. 다른 차원 혹은 어느 우주, 땅속 깊은 어느 비밀스러운 도시일지도 모르지. 영혼들이 다다르는 어느 신비로운 세상, 피터는 자신이 다녀온 곳들을 자주 그에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마구 번지는 곳이었어요. 그곳에서는 내 손도 추상화처럼 보이는 거예요. 분명 선명한 사진 같았는데,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는 사이에 주위가 새까맣게 변하기도 하고, 그 어둠 속에서 빛이 톡톡 떨어져요. 스포이드로 색깔을 가진 용액을 투명한 액체에 떨어뜨리면 그게 번지잖아요. 처음에는 분명 물방울 같았는데, 표면에 닿는 순간 그 형태는 사라지고 투명한 공간 속에서 제 색깔을 뻗어 나가죠. 명확한 형체가 없다고 해야할까요? 그런 것들이 가득했어요. 말하고 보니까 뉴욕의 야경 같네요.
맷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마구잡이로 늘어놓은 피터는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도시를 향해 시선을 돌리곤 했다.
와, 맷! 오늘도 뉴욕의 밤은 아름다워요.
그때마다 그는 대답대신 피터의 손목을 붙잡았고, 마스크를 쓴 뺨에 입술을 누르곤 했다.
넌 늘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하더라, 피터.
그러면 피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쉬지 않는 입을 가리고 있던 얄팍한 천을 코끝까지 당겨버리고, 그의 손목 정도는 가볍게 부러뜨릴 수 있을 강한 힘을 품고 있는 근육을 슬며시 움직여 부드럽게 매튜의 어깨를 붙잡았다. 약간의 까치발이 필요한 거리. 굳이 허리를 숙여주지 않는 무심함에 피터의 발꿈치는 표면과 떨어졌지만 초인적인 반사 신경과 거미의 접착 능력을 갖고 있는 피터는 이 정도로 중심을 잃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피터의 등을 두 팔로 감싸곤 했다. 손바닥으로 피터의 등과 허리를 잡으면 천 아래로 그와의 거리를 가늠하듯 근육들이 움찔거리며 그의 감각을 간질였다. 부끄럼을 품고 있는 움직임에 맷이 웃음을 터뜨리기 전에 따뜻한 입술이 그에게 닿는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입술을 툭 두드리는 가벼운 키스. 그게 딱 피터다워서 맷은 두 손으로 피터의 등을 더듬으며 더욱 바짝 제 몸을 붙이곤 했다. 서로를 감싸고 있는 얇은 천의 감촉이 퍽 우스워서 더욱 피터를 끌어안고 간지럼에 흐트러진 숨소리를 들으며 맷은 뉴욕의 야경을 그렸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뉴욕의 밤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햇볕이 내리쬘 때는 따뜻한 도시는 그나마도 평화롭게 맷을 깨워주곤 했다. 하지만 빛이 사라진 뉴욕은 그 따스함도 잊은 채 퀴퀴한 냄새만을 담고 데어데블을 기다렸다. 비명소리, 도움을 바라는 사람의 애원, 어느 외면 받는 도시의 구석이 썩어가는 지독한 냄새가 뉴욕의 밤을 만들어냈다. 아마 이것들 중에서 피터가 말하는 아름다운 뉴욕의 요소는 없겠지. 그렇기에 맷은 굳이 말하지 않길 택했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차디찬 바람이 슈트의 천 사이로 스며들었다. 피터가 말하는 아름다움을 그리기 위해 그는 피터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곤 했다. 퀴퀴한 냄새를 밀어내고 땀에 젖은 체향에 감각을 집중한다.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를 오간 피터에게서는 뉴욕의 향기가 난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햇볕의 향기, 여러 이웃들을 만나며 옮겨온 다양한 사람들의 옅은 향수와 화장품,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도시의 메마른 향. 그 모든 것들을 품고 있는 피터 파커의 체향은 어지러웠다.
너는 내 뉴욕이야, 피터. 맷은 말하지 않고 그저 피터를 더욱 꽉 안곤 했다.
오늘따라 유달리 뉴욕의 밤이 시끄럽다. 그가 서 있는 곳이 헬스 키친이기 때문일지도. 스파이더맨이 없는 날에는 맷은 헬스 키친 밖을 나가지 않았다. 데어데블이 지킬 수 있는 영역, 그의 어린 시절이 만들어진 작은 동네를 그는 구태여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여기가 내 구역이야. 그렇게 말하며 선을 그어두면 악당도 그의 구역 안에서는 눈치를 보곤 했다. 선 안에서 데어데블은 악마도 두려워하지 않을 무모함을 뽐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그의 구역은 언제나 데어데블을 반겼다. 범죄자와 뒤엉켜 주먹을 휘두르다가도 고개를 들면 익숙한 악취가 그를 반겼다. 안녕, 매티. 푸른 하늘, 사람들의 웃음, 그래도 사람이 살아갔던 풍경이 불타버린 헬스 키친에는 악취와 비명이 남았다. 그렇기에 맷은 그곳에 남기로 한 것이다. 그 냄새 속에 남아줄 이는 그밖에 없을 테니까. 과거의 추억으로 남겨진 선명했던 풍경은 흐릿하게나마 맷의 감각을 열어주었다. 시각이 사라진 자리를 채워주는 예민한 감각이 형태를 만들고,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동네의 풍경을 제멋대로 칠해주었다. 이제는 달라졌을 색깔의 동네를 맷은 여전히 어린 매티의 기억으로 추억한다. 그래서 그는 추억에 머물기로 했다.
우리 같은 길바닥 출신도 가끔은 윗 공기를 마셔야죠. 열어둔 창문으로 제멋대로 들어오는 거미 한 마리는 그런 그를 끌고 꼭 높은 곳에 올라야만 직성이 풀렸다. 거미줄은 아무리 떼어내도 단단히 들러붙어서, 맷은 어느새 크라이슬러 빌딩 꼭대기까지 당겨져 있었다. 피터는 그곳에서 뉴욕의 야경을 보고 있다고 했다. 맷은 보지 못하는 풍경을 사랑하는 피터의 심장은 강하게 울렸고, 그 울림은 맷의 손바닥에 닿아 곧 그의 가슴을 움직였다. 뉴욕을 사랑하는 너를 사랑하나보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에 빛이 번지는 풍경, 형태가 사라진 도시의 풍경을 맷은 피터를 통해 그릴 수 있었다. 악취가 없는 도시. 경쾌한 목소리와 심장 소리, 뉴욕의 햇볕과 어둠을 모두 담고 있는 피터를 통해 그리는 스파이더맨의 뉴욕은 꽤나 아름답다.
그게 오늘의 뉴욕이 아름답지 못한 이유이겠지.
그는 시끄러운 소음 사이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을, 범죄자가 누비는 뒷골목을 그렸다. 악취만이 남은 도시는 과거의 모습으로 남았다. 매튜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 이게 내 뉴욕이야. 연인의 빈자리를 지독하게 알려주는 감각은 이렇게 오늘도 그를 일깨웠다. 넌 혼자 있으면 안 돼, 맷. 사랑할 수 없는 것들만 남은 그의 밤은 지독하다. 사랑했던 것들이 사라진 도시에서 그는 홀로 섰다. 시각과 맞바꾼 극도로 발달한 감각으로도 쫓지 못하는 피터의 그림자는 뉴욕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스파이더맨의 그림자가 사라진 도시. 그곳에 데어데블이 남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의 뉴욕. 어디서 뒹굴고 온 것인지 모를 피터는 오늘도 멋대로 창문을 열고 들어와 있다. 맷은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그가 사무실을 나서기도 전에 피터의 귀가를 알았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일을 마무리하고 차분히 집으로 돌아왔다. 주머니 속 열쇠를 찾아 현관문을 여는 동안에도 피터의 심장소리는 그의 귓가를 간질인다. 가벼운 드럼 소리 같기도 하고, 뉴욕 도심에서 울리는 자동차 경적 같기도 한 피터의 소리는 특이하고 우스웠다. 열쇠를 돌리자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열쇠에 맞물린 장치가 돌아가는 감각이 만져진다. 느긋하게 집으로 들어오며 목을 쥐고 있던 넥타이를 가볍게 풀어낸 맷은 소파에 누워 있는 거미 한 마리에게 다가갔다.
“피터, 집에 오면 샤워부터 하라니까.”
“배가 고파서요.”
낯선 향기를 잔뜩 품은 피터가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움직일 힘도 없어요, 맷. 피터의 다리가 소파 등받이에 바짝 붙이며 만들어낸 좁은 공간에 걸터앉은 맷은 크게 피터에게 들으라는 듯 한숨을 쉬었고 곧 손을 뻗어 그의 지친 연인을 당겼다. 피곤에 젖은 피터의 근육은 평소보다 풀려서 움직임조차도 부드러웠다. 입고 있는 옷에서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옷장을 멋대로 열어본 모양이지. 조금 큰 티셔츠를 입은 피터는 맷의 허벅지 위에 앉아 그의 어깨에 턱을 대고 있었다. 옷 사이로 손을 넣어 만져본 맨살은 여전해서 맷은 안심하며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그래도 상처는 없네. 간지러워 움찔거리는 근육들이 맷의 손끝을 자극했다.
“나 보고 싶었어요?”
장난기가 잔뜩 묻은 물음이다. 피터의 등을 두 팔로 감싸 바짝 당겨 안으며 맷은 피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피터의 익숙한 땀 냄새에 섞인 향기, 그것은 아직 뉴욕에는 오지 않은 봄이었다. 시기 이른 꽃의 모습이 맷의 감각 위에 피어난다. 햇볕을 머금은 피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목소리가 튀어 오른다. 아마도 아니라는 대답을 예상할 연인은 그의 기다림도 모른 채 제가 더 사랑하는 줄 알겠지. 봄의 향기를 품고 있는 피터의 피부는 따뜻하고 달콤하다. 그 달콤함에서 잠시 떨어진 그는 눈꺼풀을 천천히 닫았다가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런다고 해서 그의 눈앞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시각이 사라진 그의 푸른 눈은 그 빛도 흐려졌고, 끝내 불탄 세상만 남았다. 하지만 그 흐린 눈을 피터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는 그 눈으로 피터의 눈을 보기 위해 애썼다. 감각으로 기억하는 피터의 시선, 두 손으로 피터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자 솜털이 손바닥을 쓸어내리는 기분이 든다.
“응.”
맷의 빛 잃은 눈동자가 피터에게 닿는다. 짧디 짧은 대답으로 만들어진 숨결이 입술에 닿고, 예상지 못한 대답에 놀란 심장이 두근거리며 맷의 가슴을 두드렸다. 오늘 그의 뉴욕은 아주 좁다. 맷 머독의 집, 거실 한 구석이 되어버린 뉴욕의 밤은 좁지만 풍부한 향기와 감촉으로 남아 있다. 악취도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 헬스 키친에는 봄이 얹어졌다. 피터가 보았을 어느 봄을 맷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 핀 공간. 그곳에 서 있는 너는 놀라다가 나를 떠올릴 것이다. 아, 맷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이곳을 설명해줄 방법을 생각해보겠지. 화려하지만 수수한 색의 꽃들이 가득했다며, 그곳에는 아직 우리의 뉴욕에는 닿지 않은 계절이 와 있노라고 설명해야겠다고 다짐하겠지. 하지만 그 설명도 전에 나는 너에게서 네가 본 뉴욕을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말하는 뉴욕이, 네 시선이 담고 온 그 풍경을 듣는 게 좋으니까.
솔직한 대답에 놀란 피터의 심장을 감싸 안은 그는 좁은 방 안에 피어난 봄을 그렸다.
오늘 뉴욕의 겨울밤에 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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