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업무시간

🕶x🕷/소설

2025. 3. 31. 13:55

- 은하님의 리퀘로 쓴 글

- "재판 거지같았는데 사무실 오니까 피터 자고 있어서 갑작 화 싹 가라앉는 맷이요 속 부글부글 했었는데 피터보곤 잠깐 꾸짓하고는 깰까봐 옷 조용히 걸어놓고 살금살금 자리가서 앉음"으로 조각글

 

택시에서 내리는 사이에 물웅덩이를 밟았다. 맹인에게 불친절한 운전사는 잔돈이나 얼른 가져가라며 맷의 손을 당겨 동전 몇 개와 지폐를 쥐여주었다. 심장 소리나 몸속에 끓는 혈류를 들었을 때 제대로 돌려주었을 리가 만무했지만 맷은 그저 말없이 내렸고, 구둣발이 웅덩이 표면에 닿았다. 어느 하수구가 범람이라도 한 모양인지 온 도시의 쓰레기를 묵힌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물방울이 매튜의 바짓단에도 몇 방울 스며들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저 그렇구나 넘길 작은 일에도 분노가 일었다. 얼마를 냈는지, 다시 받은 잔돈은 얼마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이 상황도, 몇 주를 꼬박 쏟아부은 재판이 처음부터 조작되었다는 것도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바지에 스며든 오수의 고약한 냄새가 몹시 신경 쓰인다.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남자가 혼자 사는 집에서 흘러나오는 철 지난 음악 소리도 취향 참 별로라며 맷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도로, 사랑에 대해 말하는 유치한 음악, 옷에 남은 불쾌한 냄새, 구둣발이 바닥에 닿아서 내는 소리까지 짜증이 난다. 맷이 길거리에 서 있는 사이, 어깨를 부딪쳐 짧은 사과를 남기고 가는 이에게서 나는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지독한 향수 냄새가 재킷에 묻었다. 맹인이 뉴욕 길거리에서 어깨를 치고 가는 행인을 폭행했다는 기사가 뜨기 전에, 맷은 사무실로 향했다.

포기는 경찰서에 가보겠다며 맷에게 먼저 돌아가 있으라는 말을 남겼다. 증언하는 이들도, 증거도 모두 맷과 포기가 알고 있던 상황과는 전혀 달라서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할 판이다.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인한 정당성을 주장해 보아도 조작된 증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시간이라도 더 벌었으니 다행이라는 포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맷은 아직 어린 나이인 의뢰인에게 새 삶을 주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 했다. 단순한 절도가 살인미수로 되는 일은 막아야지. 처음부터 헛고생했다는 생각에 허탈감이 들었고, 이 짓을 다시 해야 한다는 한숨 같은 짜증이 몰려왔다.

그래, 지금 느끼는 것은 분노였다. 고작 스물을 겨우 넘었을 나이에 주인 없는 가게에서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한 의뢰인을 향한, 그리고 그 의뢰인을 어떻게든 살인으로 엮어 실적을 챙기고야 말겠다는 검사들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다. 머릿속이 깨질 듯 울리는 게, 케인을 당장이라도 어디 집어던질 듯싶었다. 화가 나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성질이란 게 그랬다. 그러면 옆에 있는 가게 부인께서 깜짝 놀라 튀어나와 ‘아니, 머독씨? 눈이 안 보이셔서 지팡이를 떨어뜨리셨나 봅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하며 수다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애써 또 엉망인 인도의 보도블록에 케인 끝이 걸렸다며 변명을 해야겠지. 그러기 전에 얼른 사무실로 올라가자. 매튜는 계단을 올랐다.

바뀐 음악도 별로야.

사랑에 대해 떠드는 노래가 얼마나 유치한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재킷에 남은 향수 향이 지독하다.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맷은 다시 처음부터 살펴봐야 할 자료를 떠올렸다. 프린트된 글자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더듬어 읽으려면 얼마나 집중을 해야 하는지, 손끝에 닿는 잉크의 감촉이나 종이 결이 거칠한 게 얼마나 기분을 상하게 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손가락 표면이 닳는 것 같았다.

조금 거친 걸음으로 제 개인방으로 걸어간 맷은 문을 열기 전에 작은 숨소리를 들었다. 공기가 고르게 기관지를 오가고, 강한 힘을 가진 심장이 온몸으로 피를 펌프질하고 있었다. 크지만 잔잔한 소리가 깨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매튜는 아까의 걸음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손길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방안에 놓인 소파에 누워 있는 이는 주인이 들어온 줄도 모르는지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방안에는 익숙한 체취가 돈다. 거미줄을 이루고 있는 화학물질과 그 주인이 갖고 있는 따스한 체향이 가득한 것 같다. 발을 슬며시 움직여 소파에 다가가는 사이에도 피터의 심장은 잔잔히 뛰고 있었다. 깊은 꿈속에 닿아 있을 피터를 굳이 깨우지 말자고 맷은 생각했다.

창문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꽉 닫고 나간 창문이 조금 열려서 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해가 완전히 져서 추워지기 전에 닫아두어야 할 것이다. 주인 없는 사무실로 살금살금 들어와서는 무얼했을까. 소파에 앉아 기다리며 혼잣말로 떠들었을 테고,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천장도 걸어보다가 결국 잠이 들었을 거다. 맷은 피터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살짝 벌어져서 따끈한 숨을 뱉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싶은 생각을 눌렀다. 푹 자게 두자. 입술 대신에 곱슬기가 도는 머리칼만 손끝으로 만져본 맷은 아쉬운 손을 접고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오늘따라 방이 참 따뜻하다. 매튜는 어느새 제 바짓단에 스며든 악취나 재킷에 묻은 것은 잊어버렸다. 소파를 차지하고 누운 이가 주는 감각이 포근하고 간지럽다.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잠든 피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매튜는 그 감각들을 귓가에 담아두고 책상 앞에 앉았다. 다시 살펴야 할 서류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그 위에 심장 소리를 얹는다. 까칠한 종이 표면이 방금 만진 보드란 머리칼과 달라서 미소가 지어졌다.

철 지난 음악이 참 어울린다.

사랑을 속삭이는 노랫말이 피터의 숨결과 섞여서 만져지는 것만 같았다. 방안은 피터가 품고온 이야기로 가득하다. 책상과 몇 발짝 떨어진 거리에 놓여 있는 피터를 감각으로 그리며, 맷은 다시 손끝을 움직였다. 피터가 눈을 뜨고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그때까지가 맷의 업무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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