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꽃다발
🕶x🕷/소설
2025. 3. 31. 13:54
- 뉴욕의 밤 이전일 듯한 글..
꽃향기에 뒤덮일 것 같다. 맷은 문뜩 그런 생각에 잠겼다. 사무실에 하나씩 늘어난 화병은 이제 감당이 되지 않아서 마시던 생수병까지 동원되고 있었다. 사무실의 개인 방을 넘어선 꽃은 어느새 넬슨 앤 머독의 카운터까지 뻗어서 고객을 화사하게 맞이해주었다. 다양한 향기를 품은 여러 형태를 가진 꽃잎들. 어떤 꽃이냐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돌아오는 이의 손에는 꼭 그것이 들려 있었다. 집에 두어서는 곁에 둘 수 없어서 다음날 사무실로 가져와 어디든 물을 받고 꽂아두는 게 일상처럼 그렇게 몸에 배였다. 처음에는 어쩐 일이냐며 네가 꽃도 받느냐며 장난스럽게 말하던 동업자이자 친구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그 일이 달을 걸쳐 계속 반복되자 관심을 끊고, 생화를 장식할 패트병을 늘리는 것에 힘썼다. 살아 있는 것을 길게 보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들고 향이 옅어지면 그것은 어느새 쓰레기통으로 향하지만 주는 이는 그런 생각은 굳이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맷은 그저 꽃을 받아 들고, 그것을 들고 출근을 했다. 맷 머독의 사무실은 벌써 봄이었다. 향기가 가득해서 숨이 막힐 것 같다 싶다가도 그것이 가려주는 도시의 냄새를 떠올리며 맷은 창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두고 서류를 살폈다.
그 작은 틈으로 빠져나가는 짙고 깊은 향기, 그리고 다시금 들어오는 도시의 흔적들. 숨을 들이마시고 뱉을 때마다 사무실의 공기는 끊임없이 변했다. 향기롭다가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지독해져서 맷은 손가락으로 점자를 더듬는 것을 멈추고 창가로 고개를 돌리곤 했다. 시끄러운 소음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맷 머독을 부르는 소리. 밤을 재촉하는 말들이 뒤섞여서 귀를 피곤하게 만든다. 맷은 눈을 가리고 있던 색안경을 벗고 피곤하지도 않은 눈가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차마 귀를 막을 수 없다. 혹시나 놓치는 소리가 없을까 걱정하며 그는 오히려 감각을 곤두세웠다. 저도 모르게 창가로 향하는 사이에 발에 차인 화병을 대신한 패트병이 옆으로 쓰러지고 바닥에는 물이 흘렀다. 구두바닥 아래로 찰박이는 소리가 들리고, 꽃잎이 짓이겨진다. 옅어져가던 꽃잎은 맷의 발아래에서 비명을 지르듯 마지막 향기를 토해냈다. 그러면 맷은 창가로 향하는 것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닥을, 짙은 향기가 남은 구둣발을, 일렁이는 작은 웅덩이 위에 흩어진 꽃잎들을 느꼈다.
그렇게 맷 머독은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꽃향기에 뒤덮인 맷의 자리로. 밤이 깊어질 때까지 그렇게 자리를 지키다가 퇴근할 때는 꽃을 두고 집으로 갔다. 옅은 향기만 남은 집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도시로 나서면 모든 향기들은 사라졌다. 그것들은 맷 머독의 공간에 두고, 데어데블의 밤은 그저 악취와 비명 속에 놓아두었다.
끓어오르는 흥분과 호흡 사이로 숨이 흩어졌다. 맷은 빌리 클럽을 꽉 쥐고 더 이상 상대를 때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충동을 눌렀다. 도시의 소음과 냄새는 언제나 맷을 부추긴다. 조금만 더. 조용할 일 없는 헬스 키친은 오늘도 그렇게 매튜의 삶을 밤으로 이끌었다. 그 호흡 사이로 스며드는 악취, 맷은 그 사이에서 또 다시 꽃향기를 발견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것은 어느새 맷의 뒤에 서 있었다.
“오늘은 늦네요?”
“네가 늦은 거겠지.”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볍게 피하며 다가오는 발짓이 가볍다. 늦게 온 것은 자신이면서 맷을 탓하는 목소리는 경쾌했다. 장난처럼 가볍고 웃음기 넘치는 목소리가 충동과 감정을 가볍게 날려버린다. 피터의 목소리는 이곳이 헬스 키친의 어느 뒷골목인지 그저 어디 카페인지 알 수 없게 만들곤 했다. 악취를 풍기는 웅덩이에 피터의 발이 닿으며 이리저리 물이 튀었다. 맷은 그 물방울이 피터의 코스튬에 스며드는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초감각이란 그런 것이다. 코스튬에 스며드는 냄새, 그리고 그걸 다시 누르는 짙은 향기. 등에 맨 가방에서 풍기는 냄새로 오늘도 맷은 피터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또 가져왔구나.
이리저리 함께 밤을 쏘다니면서도 맷의 의식은 피터가 매고 있는 배낭에 향해 있었다. 언제 또 저것이 열릴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함께 하는 동안 스파이더맨의 목소리는 밝게 울렸고, 그 사이로 화학물질 냄새가 흩어졌다. 뉴욕에 거미줄을 남기는 스파이더맨,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의 거미줄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냄새가 얼마나 피터의 몸에 깊이 배여 있는지도 모르겠지. 그 위를 뒤덮는 것은 역시나 조화로운 향기였다. 스파이더맨은 화학물질 위로 꽃향기를 뿌리고 다녔다. 뉴욕 깊숙이 박힌 냄새들 위로도 금방 지워질 향기를 덧칠하며 피터는 오늘도 뉴욕에 있었다.
“아! 맷, 이거요.”
헤어지기 직전에 어느 빌딩의 옥상 위에서 피터의 배낭이 열렸다. 꽃잎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나름대로 온전한 상태의 작은 꽃다발이었다. 맷은 형태를 읽고 향기를 느끼며 그것을 들고 있는 손가락의 힘이나 심장소리를 보았다. 피터의 심장소리는 오늘도 말한다. 오늘도 피터는 짙은 향기를 품고 와서 맷 머독의 앞에 그저 정보를 늘어놓았다.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피터의 꽃 배달은 너무도 지독했다. 아마 이제는 그것이 싫다거나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말을 해야 끝날 것이다. 그렇기에 맷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었다. 내일 다시 이것을 들고 사무실로 출근할 것이다. 짙은 향기 속에서 숨을 쉬며 시든 것은 버리고 살아 있는 것은 물을 갈아주며 그렇게 매튜의 삶을 보내겠지. 그리고 그러다가 어느 날엔 그 꽃도 사라질 때가 올지도 모르지.
차라리 잘된 거라 생각하면서, 그랬으면 좋겠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맷은 그 향기가 없는 삶을 떠올리자 숨이 막혀왔다. 마지막 남은 것까지 그렇게 쓰레기로 처박아두게 되었을 때 담담할 수 있을까. 앞에 내밀어진 꽃다발은 오늘도 풍부한 향과 달콤함으로 맷을 불렀다. 그것은 짙고 달콤하고 그래서 가질 수 없을 것만 같다.
“피터.”
꽃다발을 건네는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맷이 입을 열었다. 피터의 심장소리가 아주 잠깐 흔들렸지만 다시 빠르고 크게 울렸다. 따사로운 것들이 어울리지 않는 삶에 스며든 그 소리와 향기에 맷은 손을 뻗고 그것을 끌어당긴다. 네 사랑을 계속 지켜줄 자신이 없어. 물을 갈아주어도 결국에는 시드는 꽃처럼 결국에는 그렇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익숙지 않은 애정에 손을 뻗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다. 너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니까.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 집안을 메우고 사라진 여러 사람을 떠올리면서 맷은 손바닥 아래에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에 웃었다. 피터의 손에 들린 것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꽃잎은 흩어져서 발아래에 밟혔다. 몇 송이는 줄기가 꺾였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갈 거야?”
발아래에 머무는 향기를 온몸으로 머금고 있는 피터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며 맷이 말했다. 따끈한 피터의 몸은 밤바람을 이기기에 충분한 온도를 갖고 있었다. 더욱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 가까워질수록 짙어지는 체향에 몸을 기댔다. 피터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 소리는 아직도 경쾌하다.
깊이 잠들어 있던 맷은 곁이 비어 있는 것을 깨닫고 손으로 아직 따끈하게 데워져 있는 빈자리를 더듬었다. 피터? 사라진 자리에는 아직도 향기가 남아 있어서 하루 종일 꽃다발을 배낭에 매고 다녔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맷은 입술을 꾹 깨물어 웃음을 삼켰다. 누굴 위해 준비한 것인지 알고 있어서, 몇 달 째 그 꽃다발이 자신에게 향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절로 터지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눌러오던 표현을 터뜨린 뒤에는 그것을 다시 잠잠하게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옆자리가 비어 있음에도 남은 향기에 미소를 짓고 마니까.
피터의 심장소리는 거실에 있었다. 바지를 챙겨 입고 문을 열자 침대에서보다 더 짙은 향기가 맷을 반겼다. 거기에 우유도 몇 방울. 마시다가 흘린 것인지 몸에서 나는 우유 냄새에 맷은 보란 듯이 한숨을 쉬며 피터에게 다가갔다. 침대가 따뜻했으니까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잠이 덜 깬 피터의 심장소리는 조금 낮고 느렸다. 소파에 앉아 있던 피터가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맷.”
“목소리가 재밌네.”
“누구 덕분인데요…. 아, 우유는 멋대로 마셨어요.”
조금 쉬어 있는 목소리가 우스워서 맷은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다가갔다가 그 입술에 다시 가볍게 입을 맞췄다. 소파 위에 두 사람의 무게가 실렸다. 바지만 겨우 챙겨 입은 채로 맞붙은 맨살은 따뜻하고 포근하다. 피터의 심장소리가 맷의 가슴을 간질이고 있었다. 따끈하게 데워진 품에서는 사무실에서도 맡았던 그 향기가 풍겼다. 좁은 사무실에서는 숨이 막히던 향기는 막상 집에서는 적당히 향기롭고 달았다. 줄기가 꺾였던 어제의 꽃은 컵에 담겨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피터에게서도 임시로 둔 화병에서도 보드랍고 단 냄새가 난다. 그리고 우유 향. 피터를 끌어안은 채로 소파에 누운 맷은 그 향기에 뒤덮였다. 또 할 생각은 아니죠? 맷의 위에 엎어져 두 팔로 단단히 붙잡힌 피터는 그저 어제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맷의 어깨에 이마를 누르고 있었다. 네가 하고 싶으면. 장난을 슬쩍 섞인 대답을 하며 맷은 피터의 등을 조금 더 세게, 하지만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아마도 이제는 사무실에 꽃을 들고 출근할 일은 없을 것이다. 조금 밋밋해질 사무실을 떠올리며, 맷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꽃다발을 꽉 쥐었다. 색도 알지 못하는 그저 향기와 형태로만 느끼고 읽을 수 있는 그것들이 언젠가 시들어 버리게 되더라도 그 향기가 영원히 삶에 배여 있기를 맷은 그저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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