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금요일은 무비나잇
🕶x🕷/소설
2025. 3. 31. 14:05
맷, 오늘은 무비나잇이에요!
이것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쌓여가는 피터의 문자를 딱딱한 음성으로 들으며 맷은 생각했다. 피터는 말이 많은 편이었고, 만나기 전에도 후에도 그 점은 한결같았다. 피터의 수다에 익숙해졌으니 이젠 문자 폭탄에도 담담해야겠지. 맷, 좋은 아침이에요. 맷, 저는 지금 일하러 가는 중이에요. 맷, 저 지금 맷이 엄청 보고 싶어요. 중요한 말이 아니니까 텍스트로 보낸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맷은 기계음이 읽어주는 제 이름이 어색했다. 차가운 음성을 피터의 목소리로 변환하여 상상하는 것도 맷이 연습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포기, 난 오늘 일찍 가볼게.”
공동창업자라는 위치에서 마음대로 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는 맷은 바쁜 일이 없다는 핑계로 일찍이 책상을 정리했다. 맷의 말에 잠깐 고개를 갸웃하던 포기는 곳 책상 위의 달력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금요일이잖아.“하고 웃어주었다. 이해심 많은 친구와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맷은 대체로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주말동안 살펴볼 일거리를 가방에 대충 때려 넣고, 재킷까지 챙겨입은 맷은 바삐 발걸음을 서둘렀다.
금요일에는 가급적 정시에 퇴근하기. 이제는 일상처럼 자리 잡은 맷의 루틴이었다. 조금 늦는다고해서 피터가 화를 낸다거나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버릇은 맷을 집으로 이끌었다. 따끈한 몸을 껴안고 싶다는 그런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버릇을 들이니 이 모양이다.
‘금요일 밤은 무비나잇이에요!’
어느날 피터가 경쾌하게 웃으며 제 옆구리에 낡은 텔레비전을 끼고 왔었다. 사귄다는 것이 거의 둘 사이에 암묵적으로 확실시 되기 시작하고, 몇 주가 흐른 시점이었다. 침대 위를 뒹굴거나, 자경단 활동을 하는 것 외에도 연인다운 일이 필요하다는 게 피터의 주장이었고, 그렇게 맷의 거실에 텔레비전이 하나 들어왔다. 피터의 연애는 늘 그런 식이었나보다, 하고 맷은 짧게 생각했었다.
금요일의 무비나잇은 오로지 피터의 취향이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납작한 화면에서 맷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없다. 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나, 동시에 전자기기의 작은 소음도 함께 들어야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집중이 잘 되는 편은 아니었다. 맷이 좋아하는 것은 그 시간동안 완전히 붙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손으로 어딜 만지고 더듬어도 피터의 집중력은 영화로 향해 있어서, 맷은 피터가 어디까지 무시할 수 있을까 알아보는 것을 좋아했다. 결국 망가진 피터의 집중력은 영화의 결말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늘 서로의 입술을 물고, 옷을 벗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영화소리에 피터의 심박과 호흡, 젖은 소리가 섞이는 것은 꽤 새로운 경험이었다. 맷은 그것을 꽤 재밌어했다.
맷, 좋아해요. 피터는 늘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쏟아지는 고백에 묻혀버릴지도 모른다고 맷은 생각했었다. 꽃잎이 떨어지고 떨어져서 그 아래에 푹 깔려버리는 것처럼, 파커식 사랑—피터는 늘 그렇게 표현했다—에 폭삭 잠겨버린 기분이었다. 질리지도 않을까. 행동이든 말이든 한 번 시작하니 숨기는 걸 모르는 피터는 수시로 맷에게 고백을 해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지는 말들에 대답을 해주든 해주지 않든 피터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느긋한 연애를 모르는 피터는 제 안에 있는 것을 매일 같이 쏟아냈고 맷은 제가 담을 수 있는 정도만 받았다. 적당히 주는 것은 피터가 연습해야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먼저 와 있을 줄 알았던 피터는 집안에 없었다. 맷은 조용한 집의 현관문을 열고, 재킷을 벗어두고, 밖에서 땀과 먼지에 젖은 정장을 편안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앉았다. 오늘도 피터가 골라온 영화를 결말까지도 보지 못하고 넘어갈 게 분명했다. 피터의 집중력은 그렇게 강하지 못했고, 맷은 피터가 예민한 구석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켜지지 않은 텔레비전을 인식하자, 바깥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와 도시의 소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들리는 것을 무시하는 것을 배우고 익혔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있었다. 이 소리를 다른 것으로 지우고, 누르고 싶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다른 행위로 풀어내고, 끝내 다 풀지 못해서 해가 완전히 지면 밖으로 나설 게 분명했다. 맷의 연애는 늘 그런 식이었다.
맷, 저 조금 늦을 거 같아요.
딱딱한 음성으로 만들어진 소리가 침실에서 울렸다. 휴대전화를 침실에 놓아둔 탓이었다. 늦으면 얼마나 늦을까. 소파에 앉아 생각하던 맷은 시끄러운 소음에 피로감을 느끼고, 결국 피곤한 눈을 끔뻑였다. 좀 추운 거 같다. 피터의 루틴에 익숙해진 몸은 벌써부터 안을 것을 찾고, 피터의 목소리를 찾아서 집 바깥까지 선명하게 만들었다. 색안경을 쓴 눈을 아무리 감고 떠도 보이는 것은 없고, 귓가를 찌르는 소음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 자동차 배기음, 발걸음 소리까지 시끄럽다. 그나마 악취는 들어오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어서 피터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맷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금요일의 무비나잇이 늦어졌다.
소파에 누워 얕은 잠에 빠진 사이에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맷은 눈을 감고도 피터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을 맞고 온 탓에 조금 차가워진 몸으로 냉큼 집으로 들어온 피터는 발소리를 내며 왔다가, 잠들어 있는 맷을 발견하고는 조심조심 집안을 걸었다. 잠과 현실의 경계에서 맷은 피터의 움직임을 읽고 싶지 않아도 읽을 수 밖에 없는 제 감각을 탓했다. 바깥 소음에 지친 귀에 들어온 익숙한 발소리와 움직임에 감각이 다시 집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눈을 뜨고 피터를 반겨주어야할까 고민하던 사이에 피터는 제멋대로 옷장을 열고 편한 옷과 바지를 꺼내어 입는다. 참 제멋대로인 애인이라고, 맷은 잠결에 웃으며 생각했다.
조심조심 다가오는 발소리, 조절하지 못하는 심장소리가 그 사이로 크게 울렸다. 강하고 익숙한 울림. 이제 일어나 주어야할까 잠시 고민하던 사이에 다가온 피터가 손을 뻗었다.
“맷, 자요?”
소파 옆에 쪼그려앉아 맷과 시선을 맞춘 피터가 살며시 물었다. 맷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피터의 호흡을 듣고 있었다. 익숙한 체취가 좋았다. 피터가 들어올 때부터 느껴지던 체향이 이젠 코 앞에 있었다. 매앳—. 늘어지게 맷을 부른 피터가 대답을 기다리듯 한참을 조용히 맷을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결국 대답이 없자, 손을 뻗어 색안경을 멋대로 벗겨 탁자에 올려두었다. 무비나잇은 안 할 모양이지. 늦은 피터를 놀리는 기분으로 맷은 자는 체를 했다.
“진짜 자는 거죠?”
자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확인 하듯 피터가 되물었다. 피터의 얕은 숨이 얼굴을 간질이고, 따끈한 입술이 맷의 감은 눈두덩이 위로 닿는다. 몸은 식어 있는데 입술은 따뜻한 게 우스워서 일그러지는 입가에 애써 힘을 주며 맷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어린 애인을 골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같다. 이대로 계속 눈을 감고 있으면 피터가 아무것도 못하고 속상해하다가, 결국 침대로든 옮겨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다 포기한 심장소리로 맷…하고 부르면 눈을 뜨고 바라던 대로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몸을 껴안자고, 눈가에 키스하는 입술을 이로 물어주자고 생각했다. 영화보긴 글렀어, 피터. 눈을 감은 맷이 입가의 웃음을 애써 눌렀다.
맷의 예상대로 피터는 맷의 눈가에 두 번 입술을 붙였다 떼고, 맷의 무릎 뒤와 등을 받쳐들고 그를 들어올렸다. 방사능 거미에게 물린 피터는 저보다도 무거운 맷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대로 침대로 가면 되는데. 피터는 맷을 든 채로 다시 소파에 털썩 앉아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자세가 불편할까 맷의 등을 받춰준 팔이 안정적이었다. 이대로 설마 영화 볼 생각인가. 피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로 맷이 슬슬 일어날까 고민하는데, 뜨끈한 입술이 코끝에 닿았다. 쪽 소리가 나는 키스를 남기고도 부족했는지 뺨에도 눈가에도 입술 도장을 붙이는 게 간지러웠다.
“맷, 사랑해요.”
결국 입술에도 입술을 붙이며 오늘 못한 고백을 쏟아낸다. 적당히 주는 법을 모르는 애인은 자고 있는 이에게도 무엇이든 퍼줄 기세였다. 입가에 여러 번 닿고 떨어지는 입술이 참 따끈하고 부드럽다고 맷은 생각했다. 잠든 사람에게 무슨 짓이야. 깨어 있는 것을 여전히 눈치 채지 못한 피터가 제 얼굴에 온통 입술 도장을 찍는 것을 느끼며, 맷은 꾹 다물었던 입술을 열었다.
“피터, 영화는 안 볼 거야?”
쿵.
깜짝 놀란 심장이 크게 펌프질을 시작했다. 맷은 열이 오른 입술에 피터가 그러했듯 입술을 붙였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어요?”
“한참 전부터.”
피터의 내면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들어서 맷은 피터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웃었다. 금요일은 무비나잇이잖아. 어깨에 이마를 붙이고 놀리듯 말하는 맷의 말에 피터가 눈을 굴렸다.
“오늘 영화는 안 봐도 될 거 같아요. 맷도 피곤하잖아요.”
입술을 겹치고, 뺨을 익숙하게 잡아와서 맷은 피터가 바라는대로 입을 벌려주었다. 익숙해진 것은 맷만이 아닌 모양이다. 두 팔로 꽈악 껴안는 피터에게 맷은 아까처럼 온몸을 기댔다. 소파에서 겹쳐지는 뜨끈한 몸이 나쁘지 않았다. 맷의 예상과 다르게 두 사람은 소파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 없는 소파 위의 무비나잇. 서로에게 익숙해진 몸은 결국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냈다. 껴안은 두 팔에 힘을 풀지 않고 좁디 좁은 소파에 겹쳐누워 있기. 뜨거운 것은 없지만 따끈하고 부드러웠다. 맷은 잠시 고민하다가 피터의 몸을 제 팔로 당겨 바짝 몸을 붙였다. 사랑한다는 말 위로 피터의 입술이 수시로 맷의 얼굴에 닿고 떨어졌다. 새로운 절충안도 괜찮은 거 같아. 맷이 다시 눈을 감자 눈두덩이에 닿는 키스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쪽쪽. 부끄럼을 모르는 소리에 맷의 감각은 소파 위에 머무른다. 피터는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맷을 끌어안고 있고, 키스를 쏟아부었다. 잔잔한 로맨스 영화의 연인들처럼.
금요일은 무비나잇이었다.
'🕶x🕷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맷피터] After the rain MCU (0) | 2025.03.31 |
|---|---|
| [맷피터] 다시 돌아올 봄 (0) | 2025.03.31 |
| [맷피터] 겁쟁이 모임 (0) | 2025.03.31 |
| [맷피터] 평범한 곳 (0) | 2025.03.31 |
| [맷피터] 집을 찾습니다 (0) | 2025.03.31 |
🕶x🕷/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