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다시 돌아올 봄
🕶x🕷/소설
2025. 3. 31. 14:06
- 은하님 썰이 좋았어요🌸
쿵-하고 땅으로 꺼지는 듯한 심장 소리가 한 번.
그리고 그보다도 낮은 소리의 한숨이 두 번.
아, 분명 활짝 피어 있었다고 들었는데. 흰색 스니커즈가 흙에 더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피터는 그저 꽃이 가득해야 할 나무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과 다른 어수선한 풍경은 아름답지 못하다. 넓은 공원에서 벚꽃이 아주 많은 곳이 있다고 맷을 끌고 왔는데, 꽃을 피울 시기가 지난 나무는 붉은 빛을 버리고 푸른 빛으로 탈바꿈하는 중이었다. 그 과정 사이의 광경은 그리 예쁘지 않아서, 피터는 제 옆에 선 매튜를 슬쩍 쳐다보다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꽃잎이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푸른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분홍빛 색을 입고 있던 나무는 이제 완전히 봄을 잃고 초록빛으로 바뀌어 가고, 그곳을 덮고 있던 꽃들은 이제 흙바닥을 구르고 있다. 센트럴파크에 분명 벚꽃이 가득 피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이야기가 며칠 전이었는지 몇 주 전에 들은 것이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네가 그럼 그렇지, 피터. 스스로를 탓하며 피터는 눈을 끔뻑이고 발끝으로 젖어 있는 축축한 흙바닥을 찼다. 해도 지고 캄캄한 공원에는 그저 푸르고 푸른 나무들이 빼곡히 서 있었고, 가로등 몇 개만이 그 위를 밝힐 뿐이었다.
”괜히 왔나 봐요…“
바닥을 굴러 더러워진 꽃잎이 신발 밑창에 들러붙고, 피터의 목소리도 바닥을 기었다. 벚꽃을 보러가자고 할 때만 해도 들떠있던 피터의 심장 소리는 낮고 낮아져 꽃잎과 함께 땅을 굴렀다. 실망이 가득한 맥박이 매튜를 간질이고, 한숨이 귓가를 두드린다. 맷은 다른 손으로는 피터의 팔을 잡은 채로 젖어 있는 흙바닥을 케인으로 꾹 눌렀다. 밤사이에 쏟아진 비로 그나마 있던 꽃도 떨어지고, 흙바닥은 수분을 머금고 찰박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가득한 향기들.
“좀 더 일찍 와야 했는데…”
바닥에 떨어진 꽃잎 위로 피터의 낮아진, 그리고 물기 젖은 목소리가 얹어졌다.
“괜찮아, 피터.”
“맷에게 벚꽃을 보여주고 싶었는걸요.”
코끝이 눈물로 젖은 듯 피터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장 소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잃은 뒤였다. 맷—, 꽃 보러 갈래요? 하고 묻는 쾌활한 목소리가 꾹 쥐어져 있는 피터의 주먹에 겹쳐졌다.
비 냄새를 머금은 땅. 맷은 피터의 팔 안쪽을 잡았다가 손을 내려 실망으로 꾹 접어진 피터의 손을 맞잡았다. 힘이 들어간 손가락이 맷의 손길에 풀어지고 자리를 내어주었다. 깍지를 끼고서도 다음을 잊은 피터는 그저 젖은 흙이 제 신발을 더럽히는 줄도 모르고 하늘만 뚫어져라 볼 뿐이었다. 달이 떴을 시간, 비가 지나간 뒤의 하늘은 맑고 맑아서 뉴욕의 야경에도 별 몇 개가 떴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는 것은 파릇한 이파리가 돋아가는 나뭇가지들이다. 맷과 함께 보길 바랬던 것이 아니어서, 피터는 차마 맷을 볼 수가 없어졌다.
케인이 푹 들어가는 젖은 흙, 그 위를 구르는 꽃잎들, 그리고 피터의 실망이 가득한 심장 소리. 그 모든 것이 잡힐 듯 명확하게 매튜의 감각을 밝혀주고 있었다.
“난 지금도 충분해. 향기는 가득 남아 있으니까.”
깍지 낀 손을 당겨 피터의 뺨에 제 어깨를 대주며 맷이 말했다. 꽃이 있던 자리에 돋아나는 새싹의 냄새가, 그리고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꽃향기가 남았다. 비 냄새를 충분히 머금은 땅은 지나간 꽃잎들의 향기를 가득 안고 있어서, 숨을 쉴 때마다 달큰한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참 예쁜 꽃이 피었던 모양이라고, 그 향기들로 짐작할 수 있었다. 피터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대신 맷의 감각은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지나간 꽃들의 향기를 머금은 공원은 여전히 가득한 벚꽃잎들로 뒤덮여 있는 것만 같아서 맷은 제 어깨에 기대어 있는 피터의 손을 꼭 쥐었다. 나는 너랑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걸. 구둣발에 묻은 흙에 남은 벚꽃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빛을 잃은 꽃잎들은 신발 밑창에 붙어 마지막 향기를 토해내며 찬란했던 순간을 회상시켰다. 센트럴파크의 지나간 봄, 맷은 그 광경을 감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내 감각으로는 꽃이 가득한 거 같은 걸.“
“정말요?”
“응. 꽃 향기도, 비 냄새도 좋아.”
그래도 너랑 볼 수 없는 건 아쉬운 거 같아. 매튜는 그런 말은 굳이 꺼내지 않고 그저 피터의 손을 잡고 젖은 길을 걸었다. 비에 젖은 흙밭은 구두를 더럽히지만 나쁘지 않다. 맷을 따라 걷는 피터는 아까보다는 나아진 모양이지만 여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맷은 그 심장 소리와 한숨으로 감각으로 그리는 풍경과 피터가 보는 풍경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땅 위를 구르는 꽃잎은 그리 아름답지 못한 모양이라고, 피터의 신발 밑창 아래에 가득 붙은 꽃잎 수마저도 알아차리는 감각으로도 알지 못하는 광경을 그저 상상할 뿐이었다.
비가 지나간 뉴욕은 악취마저 씻겨 내려가고, 벚꽃향기가 남은 공원에는 피터의 체향도 섞여서 매튜에게 이곳은 여전히 봄이었다.
“피터, 내년에 꼭 같이 보자.”
맷이 속상함이 가득한 어린 애인을 달랬다. 제가 느끼는 풍경을 피터에게 알려줄 수 없어서, 그게 조금 서글퍼진다. 이렇게 가득 남아 있는 향기들을, 손에 잡힐 듯 명확한 감각들을 전해줄 수 없어서 맞잡은 손을 꽉 쥐며 내년을 기약했다. 보여주지 못해서 슬퍼하는 그에게 전해주지 못해 속상하다 말하는 대신에 다음을 말했다. 남아 있는 봄의 감각을 피터와 함께 살필 수 없음이, 그리고 꽃잎이 저문 자리에 솟아나는 잎들의 향을 그저 말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퍼졌다.
꽉 잡은 손이 따뜻해서 피터는 내년을 기약하는 맷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었다. 색안경에 비추어진 가로등 불빛, 어둡지만 선명한 입가를 보고, 다정히 웃고 있는 표정을 봤다. 예쁠 때 가득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맷에게는 여전히 봄이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피터는 맷에게 더욱 바짝 붙었다. 내년. 1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니. 볼 수 있는 시간보다 기다림이 긴 벚꽃은 삶이 빽빽한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아서, 내년에도 이렇게 놓쳐버리게 되는 게 아닐까 솟아나는 걱정은 맷의 다정한 미소에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금 풍경이 예쁘진 않나 보네. 피터, 너도 같이 봤으면 좋을 텐데.”
걱정을 읽어버린 맷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맷의 말을 들으며 피터는 눈을 끔뻑이고, 아니라 말하려다가 곧 거짓말을 들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입을 닫았다. 어두운 공원에 젖은 흙바닥을 뒹구는 꽃잎들, 여름으로 다가가는 공원의 모습. 피터는 주변의 풍경을 살피다가 다시 매튜를 본다. 그래도 같이 올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맷에게는 꽃이 남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손을 꼭 잡는다. 깍지를 낀 손은 싸늘한 날씨에도 따뜻했다.
겨우 남은 벚꽃잎들마저 털어버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갑자기 부는 바람에 잠시 눈을 찡그렸던 피터는 곧 눈을 뜨고 다시 시선을 위로 돌렸다. 잎들 사이에 숨어 있던 벚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모여 달빛을 가리고, 비처럼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잠시 숨을 삼킨다. 여전히 꽃잎이 남아 있었구나. 아직 봄이 남았음에 감탄하던 피터는 슬쩍 시선을 돌려 맷을 보았다. 어느새 매튜도 피터와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가로등의 빛, 달빛, 그 빛들을 가리듯 벚꽃잎이 쏟아져 내렸다. 아마 바람이 불면서 남아 있던 향기나 꽃잎들이 날아올라서, 꽃바람을 감각으로 읽고 있겠다 생각하며 피터는 맷의 색안경 위에 붙은 분홍빛 꽃잎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벚꽃 비에 홀딱 맞은 사람들처럼 맷의 색안경에도, 뺨에도, 이마에도, 곳곳이 꽃잎에 젖어 있었다.
“맷—, 얼굴에 꽃이 잔뜩 폈어요!”
“너도 마찬가지야, 피터.”
“그래도 저는 맷만큼 가득 붙진 않았을 걸요?”
꽃잎들을 머금은 바람이 지나가고, 숨어 있던 향기들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두근거리며 밝게 뛰는 심장 소리에 맷은 웃음을 지우지 않고 제 뺨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는 피터를 보고 있었다.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대신, 앞에 서 있는 이의 체향과 맥박이 감각으로 명확하게 그려졌다. 너에게도 아름다웠구나. 코끝과 뺨에 피터의 손가락이 툭툭 닿고, 붙어 있던 벚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돌아갈까?”
찬바람에 식은 몸이 추워서 서로를 바짝 붙여 껴안고 맷이 속삭였다. 대답을 대신해서 맷을 꼭 껴안은 피터는 그저 맷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쿵쾅대는 심장으로 말했다.
젖은 흙이 구둣발에 묻어서, 꽃잎이 여기저기 붙어서, 손을 꽉 쥐고 있어서 그 사이로 머금어진 게 따라 들어온 모양이지.
꽃잎이 모두 떨어졌을 텐데, 향기는 가득했다. 체향에 섞인 벚꽃 향은 집안까지 따라왔다. 차가운 바람에 식어 있던 몸을 서로 껴안고 누울 때도, 입을 맞출 때도 달큰한 향기가 침실을 맴돌았다. 강하게 울리는 심장 소리, 이제는 웃음으로 통통 튀는 목소리, 발갛게 되어 열이 오른 뺨. 턱 아래를 두 손으로 감싸고 엄지로 따끈한 뺨을 살살 문지르는 매튜의 손길에 피터가 웃음을 터뜨리다가, 고개를 살짝 숙여 맷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익숙한 체향에 섞인 봄 향기들. 아마 당분간은 맡지 못할 향기를 듬뿍 기억하며 손을 맞잡는다. 미처 털어내지 못한 꽃잎이 남아서 이렇게 향이 가득한가보다. 간지럽다는 피터의 말에도 입술을 보드라운 피부 위에 누르고 누르며 맷이 생각했다. 매튜의 집안까지 침범한 향기들은 매튜의 집을 봄으로 만든다.
따끈한 온기가 좋아. 피터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진 바깥에 미간을 찌푸리며 맷에게 더욱 바짝 붙었다. 파고들기 좋게 팔을 들어주는 맷의 배려가 좋아서 계속 누워 있고 싶었는데,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눈가를 찌르는 햇빛이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푹 잠든 모양인지 눈을 꼭 감고 누워 있는 맷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피터는 고개를 살짝 움직여 맷의 입술에 도장을 찍었다 떼어내고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던져둔 옷가지를 주워 입는 동안에도 푹 잠든 맷을 잠깐 쳐다보던 피터는 어젯밤의 광경을 잠시 떠올렸다. 꽃잎이 가득 날리던 밤, 같이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벚꽃잎들이 맷의 뺨과 이곳저곳에 떨어졌던 게 생각이 나서 웃음이 터졌다.
꽃잎을 가득 붙이고 있던 맷. 그 광경을 떠올리니 외투 안에 박아두고 있던 립밤이 생각이 나서, 피터는 냉큼 이불을 덮고 푹 잠든 맷 위로 올라탔다. 미끈하고 촉촉한 립밤을 바른 입술로 뺨과 이마 곳곳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는 동안에도 매튜는 얌전히 눈을 감고 있어서, 결국 입술 위로도 도장을 꾹 눌렀다. 잠깐 버드키스만 하려고 했더니, 어느새 피터의 몸은 맷의 팔에 감겨 있었다. 림밤으로 촉촉해진 입술이 맞물리고 미끈거리던 느낌도 타액에 젖어 사라져 버린다. 입술을 가볍게 물고 빠는 동안 립밤은 서로의 타액으로 녹아버렸다.
“깨어 있으면 말 좀 해주지 그래요?”
“아침부터 키스하니까 깨버린 거지. 난 분명히 자고 있었어.”
“거짓말! 아까 팔 들어줄 때부터 이상했다니까요.”
감고 있던 눈꺼풀이 그제야 올라가고 흐릿한 눈동자가 드러난다. 그 눈두덩이 위로 다시금 입을 맞춰준 피터는 몸을 슬쩍 움직여 다시 맷의 옆에 누웠다.
어제 벚꽃 예뻤던 거 같아요. 아침부터 밤에 본 꽃잎 이야기를 하는 피터의 목소리가 좋았다. 들어왔던 향기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 체향만 가득 남은 침대 위는 서로의 온기만을 딱 좋게 품고 있었다.
“내년에는 활짝 폈을 때 가보자.”
“좋아요! 그럼 내년에는 맷이 저 데려가 줘요!”
맷은 저보다는 시간약속 잘 맞추잖아요. 다시 팔을 들어준 맷의 품에 파고들며 피터가 말했다. 뺨에 닿는 맷의 입술이 어제보다 보드라운 게 역시 아까 바른 립밤 때문인 게 분명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내년에는 더 예쁘고, 향기도 좋고, 멋진 곳으로 가요. 흐릿한 눈동자를 보며 피터는 다시 나른하게 잠에 빠질 때까지 입을 움직였다. 맞닿은 몸은 뜨거웠던 밤보다 적당하게 서로를 감싼다. 봄은 갔지만, 여전히 헬스키친에는 봄이 남았다. 벚꽃잎과 비슷한 색의 립밤으로 입술 도장을 꾹꾹 눌렀던 뺨과 이마에 남은 옅은 자국들에 피터는 그저 웃으며 맷의 턱과 뺨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입술로 만든 꽃잎을 잔뜩 붙인 맷에게 안긴 몸이 따뜻하다. 그 온기로 피터는 다시 돌아올 꽃피는 시기를 상상할 수 있었다. 맷이랑 함께 보면 무엇이든 좋을 거야. 바람에 날렸던 꽃잎들이 맷의 색안경과 뺨에 붙었던 것처럼, 피터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에는 옅은 색의 벚꽃이 남았다.
맷도 모르는 사이에 얼굴 위로 톡 떨어진 벚꽃잎은 피터만 볼 수 있는 헬스키친의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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