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평범한 곳
🕶x🕷/소설
2025. 3. 31. 13:57
- 맷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피터
친절한 이웃하면 간식만 받는 줄 알았는데, 얼떨결에 중고 바이크 생겼어. 너무 늦게 찾아주는 바람에 새 바이크를 샀다고, 가져가라는데 역시나 폐차장에 가져가기 싫어서 그런 게 틀림없어. 쓰레기 대신 버려주는 것도 친절한 이웃의 역할이니까, 하며 영차 두 손으로 번쩍 들고 가는데 모양새가 이상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웹스윙하면서 한 손으로 들고 갈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보니 예전에 바이크를 탄 적이 있었지, 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나는거야. 상태도 보니까 멀쩡한데. 결국 슈트를 벗고 바이크에 올라탔지. 오랜만에 타보는데 감이 죽지 않았네. 이렇게 땅바닥에서 도로의 교통체증에 갇히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지 뭐. 이대로 폐차장까지 갈까. 그런데 이렇게 멀었나.
거미줄 대신에 바퀴로 굴러가니 새삼스럽지 뭐야. 여기가 어디지? 했더니 헬스키친이야. 생각은 곧 아, 맷 사무실이 근처인데로 이어졌지.
얼마 전에 고백했다 대답도 못 듣긴했는데, 내가 한 게 고백이 아니었나, 일단 무작정 사무실 밑으로 갔어. 곧 퇴근 시간이 아닐까 싶었거든. 뉴욕의 지긋지긋한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시간. 어쩐지 도로가 차들로 끝없이 이어진 것 같더라니. 6시가 되어도 맷이 내려오지 않아서 그냥 무작정 바이크에 앉아 기다렸어. 전화해볼까 하다가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아서. 해가 다 지고 나서야 계단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거야. 맷이야. 밑에서 소리 없이 있었더니 초감각으로도 몰랐던 모양인지 맷이 “피터?”하고 불렀어.
“무슨 일이야?”
피터 파커가 사무실에 찾아오는 일이 늘 좋은 소식이 아니니까 당연한 반응이지. 괜히 왔나? 약간 후회가 들었지. 맷은 분위기 잡는데 선수잖아. 파커는, 그런 거엔 끔찍하니까. 역시 괜히 왔나. 잠깐 망설이다가, 발로 땅도 차보다가, 그래도 역시 말해야겠다 싶었어.
“나랑 데이트할래요?”
“운전은 할 줄 알고?”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뒤에 있는 바이크를 알아차린 게 틀림없어. 일단 무사고 경력인데, 운전은 몇 년 안했고 안 한 날이 더 긴 것도 무사고에 들어가나? 결국 어깨를 으쓱이며 맷을 봤지.
“여차하면 제가 맷을 안고 뛰어내릴게요!”
와, DD표정. 멘트를 잘못 골랐어, 파커.
데이트 신청은 글러먹었네. 발로 땅이나 차며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다가, 그것도 형편 없을 것 같은 거야. 마스크만 벗으면 꼭 이렇더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거. 스파이더맨일 때는 나름 괜찮지 않아? 걱정마세요, 신사분! 당신의 친절하고 귀여운 이웃 스파이더맨이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오늘따라 유달리 아름다워보이시네요? 저의 거미센스가 그렇게 말하는군요. 물론, 그런 말을 할 타이밍에 맷도 데어데블 복장으로 옆에 있었으니까 한 번도 말해본 적은 없어. 언제 맷 머독에게 일이 생기면 말해볼까? 물론 안 생기는 게 좋지만! 당연히 그러길 바라지만!! 뉴욕에서 상황이란 건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런데 싫어할 것 같긴 해.
맷이 거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릿속이 배낭에 넣어둔 감자칩처럼 잘게 부서진 것 같아서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맷이 고개를 갸웃거렸어. 날카로운 데어데블 표정도 사라졌지. 은근히 맷은 표정이 다양하다니까.
툭-. 맷의 얼굴이나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맷이 케인을 건넸어. 가슴팍에 맷의 손이 닿았지. 지팡이가 생각보다 꽤 가벼웠구나. 얼떨결에 맷의 손을 잡았다가 두 손으로 케인을 들고 맷을 바보처럼 보고 있었어. 네 가방에 넣어줘. 맷의 고개가 까딱였지. 아, 맞다! 가방! 슈트를 대충 구겨 넣은 배낭이 바이크에 대충 던져져 있었거든. 그것까지 알다니 역시 맷은 뭐든 안다니까. 케인을 접어서 가방에 대충 쑤셔넣으며 말을 골랐어.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야.
“그래, 피터. 어디로 갈 거야?”
넥타이를 슬쩍 느슨하게 한 맷이 바이크 옆에 섰어. 그래, 목적지! 목적지가 문제네. 해도 졌고 멀리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니까. 평소였으면 둘다 마스크를 쓰고 어디 높고 높은 빌딩으로 올랐을 텐데, 땅바닥에 찰싹 붙은 바퀴로는 앞으로 가야하잖아. 잠깐 고민하고 있는데 맷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어. 꼭 특별한 곳일 필요 없다는 것처럼. 맷의 흐릿한 눈이 색안경 뒤로 비쳐보이는 게 좋아. 왜 그날 고백했을까. 맷은 대답도 안해주는데, 또 데이트 하자며 오는 거 정말 형편없지 않아? 그래도 맷 앞에서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져서, 어차피 형편없는 파커니까, 무엇이든 망치는 스파이더맨이니까 더 엉망으로 구는 걸까.
특별하지 않은 곳. 높디 높은 빌딩 꼭대기보다 평범한 곳.
처음 바이크를 샀을 때 갔던 곳이 떠오르는 거야. 모자란 돈을 모으고 모았는데도 부족해서, 결국 메이 숙모와 벤 삼촌이 날 위해 모으고 계셨던 돈도 쓰고서야 살 수 있었던 첫 번째이자 마지막 바퀴 달린 모터사이클. 처음 샀던 날에 기뻐서 무작정 몰고 코니아일랜드로 달렸어. 관람차도 있고, 즐거운 놀이기구도 있었지만 그냥 해변가에 가고 싶었던 거 같아. 거미줄을 쓰면 더 편하다는 생각도 안할 때여서 그냥 뉴욕의 도로와 자동차를 지나고 사람들을 지나서 파도치는 해변으로 갔어. 유리알처럼 부서지고 다시 사라지는 파도가 아름다웠던 기억이 남았던 거 같아.
“생각이 있으니까, 얼른 타요!”
헬멧은 하나 밖에 없어서 맷에게 씌워주며 말했어. 뉴욕 교통법 위반이려나. 부디 경찰에게 잡히지 않길 바라면서 바이크에 올랐어. 뒤로 맷이 앉았지. 바이크 뒷 좌석에 처음 타는 사람처럼 빳빳하게 굳어 있는 몸이 재밌어서 웃음을 터뜨렸어.
“꽉 잡아요, 맷!”
허리를 꽉 붙잡는 맷의 손, 몸이 꽤 가까이 붙었어. 이런 건 생각을 못했네. 파도 소리를 향해가는데,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는 거 같아서 부끄러웠어. 이거 내 심장 소리겠지? 모터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바퀴를 굴리고 있어. 앞으로 앞으로. 도시의 바람이 헬멧을 쓰지 않은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는 거 같아. 꽉 막힌 차들 사이로 달리는 것도 꽤 재밌는 거 같아. 맷이랑 찰싹 붙은 걸 잊어보려고 계속 주위를 돌렸어. 바람이 뺨을 스치는 감각, 컴컴해지는 뉴욕이 다시 화려하게 탈바꿈하는 모습, 힘이 들어가 있는 맷의 손이 내 허리를 쥐고 있는 느낌. 두근거리는 게 들킬까 무서워졌어. 데이트 신청이긴 했는데 긴장한 게 들키면 나답지 않은 거 같잖아. 도로가 막히면 차들사이로 비집고, 앞으로 빠르게 달렸어. 공중에서 묘기를 부리며 다닐 때랑 좀 다른 느낌인 거 같아. 등에 맷이 닿아 있어서 밤이지만 따뜻한 거 같아서 웃음이 났어.
두근두근 울리는 게 분명 내 심장일 거야. 뉴욕의 지독한 교통체증을 지나서 해변으로 가자. 혹시라도 넘어지면 맷을 안고 굴러버리면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달렸어. 바람이 모든 소리들을 부숴버리는 것 같아.
“맷-! 좋아해요!”
얼굴로 소금기가 도는 짠 바람을 맞으며 소리쳤어. 뉴욕의 야경을 지나서 어두운 바다가 보였어. 뉴욕은 항구도시인데도 자꾸 그걸 까먹는단 말이야. 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바다, 파도 소리. 대답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무서워. 거절해도 맷을 좋아하길 멈추지 못할 테니까. 글러먹었어. 거절해도, 받아줘도, 골칫덩이를 맷에게 안겨주는 셈이야. 피터 파커라는 세상에서 제일 볼품 없고 머리 아프고 형편 없는 끔찍한 문제. 변호사 일로도, 데어데블 일로도 복잡한 맷에게 이런 걸 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충동적인 파커의 입을 멈출 수가 없었어.
악당들을 몇 명 때려주고 빌딩에서 먹는 늦은 저녁. 핫도그를 씹으며 야경을 보다가 문뜩 옆에 앉은 맷은 뭘 보고 있나 궁금해졌어. 나는 이 빌딩 위에 올라서 뉴욕이 반짝거리는 걸, 캄캄한 세상에 빛이 반짝거리는 게 좋은데 맷은 무엇을 보려고 왔을까. 입술에 묻은 머스타드랑 케찹을 혀로 닦아내다가 맷을 바라봤어. 마스크를 잠깐 벗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는 데어데블. 땀에 젖은 머리칼이나 멍하니 어디도 보지 않는 것 같은 눈동자나 그런 게 눈에 들어왔지. 언제까지고 맷이랑 이렇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리고 입술 사이로 충동적으로 말이 튀어나왔지. 맷, 좋아해요. 핫도그를 쥔 맷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웃음을 터뜨렸지. 피터, 진짜야? 대답대신 진짜냐 묻는 맷의 말투에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어. 전 맷이 좋은 거 같아요.
부서지는 파도. 깜깜하게 불 꺼진 바다. 따뜻하게 닿은 몸이 좋아.
“나도 그래.”
모래사장에 도착하기 전에 잠시 속도를 낮추는데 낮은 목소리가 들렸어. 그게 맷의 대답이라는 것은 한참 있다가 깨달을 수 있었지. 모래밭에 가서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바다 앞에 앉아서 파도소리를 듣자. 발가락 사이사이를 간지럽히며 감싸주는 해변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걷자. 근처 자판기에서 탄산수랑 콜라를 사다가 가볍게 부딪히자. 부서지는 소리가 파도의 것인지, 누구의 심장소리인지 알 수 없을 때까지 손을 잡고 있자. 바퀴가 앞으로 굴러갔어. 조금은 부드러워진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뺨을 감싸며 지나쳤지. 고개를 슬쩍 돌려봐도 헬멧을 쓴 맷의 표정은 보이지 않아.
“제대로 앞을 봐, 피터. 나 내일 재판 있어.”
“걱정마요! 제가 안고 구를 테니까요!”
온몸으로 잡고 도로 위를 굴러서, 맷은 멀쩡하게 해줄 자신이 있는 걸. 코끝에 닿는 바다의 냄새가 좋아. 두 팔로 단단히 허리를 감은 맷이 더 가까이 붙어왔어. 따뜻해서, 포근해서 웃음이 터지는 거야. 진짜 저 맷은 안전하게 해줄 테니까 걱정말라니까요. 바퀴는 멈추지 않아.
“피터, 너도 다치지 말라는 말이야.”
가까워진 모래밭. 더 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어. 드디어 멈춰서고 앞으로 펼쳐진 컴컴한 바다를 보다가 여전히 팔을 두르고 있는 맷을 고개를 돌려 보았어. 헬멧을 안 쓰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파도가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어. 그리고 그보다도 내 심장 소리가 큰 것 같아. 두근두근. 얼굴이 빨개졌을 거 같아서 부끄러워졌어. 일단 내려서 모래밭을 걷고, 해변에 앉아서- 머릿속으로 정리했던 계획은 엉망이 됐어. 파커, 역시 넌 그렇지.
철썩이는 파도. 헬멧을 벗은 맷의 머리칼이 조금 땀에 젖은 거 같아. 쿵쾅대는 심장. 바이크에 내려서 모래밭으로 내려가자고,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던 거 같은데 입술이 뜨거워졌어. 달아오른 호흡. 맷도 입술은 부드럽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뜨겁게 달라붙는 맷의 키스에 결국 머리가 녹아내렸지.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거 같아. 근데 거기에 소금을 더한 거 같다는 생각을 했지. 짭짤하고 달달한 느낌.
뉴욕은 항구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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