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피터] 겁쟁이 모임
🕶x🕷/소설
2025. 3. 31. 14:04
- '스파이더맨의 변호사, 맷 머독(유령피터)' 썰의 피터 부분 이야기 단문
피터는 겁이 많은 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자동차가 오지 않는지 주위를 살피고, 길을 걸으며 보도블록에 툭 튀어나온 곳은 없는지 땅을 보며 걷는 게 일상이었다. 약한 뼈가 부러지면 몇 주는 깁스를 하고 다녀야 하는지 알고 있던 탓이었다. 넘어지면 생기는 생채기가 쓰라려서, 그 상처에서 배어 나온 피에 눈물을 쏟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되어도 비슷했다. 처음 빌딩에 올라서 뛰어내리기로 각오했을 때, 두 다리가 얼마나 떨렸는지 아무도 보지 못해서 다행이지. 누군가 보았다면 저 거미남자는 사실 겁쟁이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피터는 겁쟁이었다.
맷, 같이 점심이나 먹을래요?
맛집을 발견했거든요.
좋아한다는 말을 해야하는데 겁 많은 파커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주된 이야기를 피해버린다. 또 다른 날이 있겠지. 그러자는 맷의 답변을, 혹은 전화를 기다리며 피터는 생각했다. 혹시나 거절 당해도 괜찮을 거라고, 서로의 감정은 분명하니까. 같이 밥을 먹고, 저녁까지 기다려서 맷과 함께 동네를 돌자. 피터는 맷과 함께 갈 맛집 리스트를 고민하며 계획을 세우곤 했다. 대체로 그 계획은 언제나 비슷하다. 맷이 다시 일하는 동안은 잠깐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거나 혼자서 뉴욕 이곳저곳을 누비자. 무서웠던 웹스윙, 뉴욕의 하늘 아래는 이제 따뜻하고 포근한 것이 되었다. 겁쟁이 파커는 조금씩 무서움을 잊는다. 거미줄에 의지해서 공중을 누비며 사람들을 돕고, 맷에게 조금 더 만나자며 다가가면서 그렇게 어제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길 노력한다.
그렇게 내일이 되면, 또 내일이 되면.
맷에게 말할 수 있겠지.
이제는 땅을 보지 않고 뉴욕의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을 가른다. 왜 맷에게 말하지 못할까. 이렇게 분명한데. 문뜩 그런 생각이 들면 피터는 제 삶과 맷의 삶을 떠올렸다. 겁쟁이들의 삶은 그런 법이었다. 말 한마디가 그렇게 지독하게 무거울 수가 없다. 피터는 불분명한 관계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맷을 불렀다. 맷, 보고 싶어요. 따끈한 바람을 느끼며 빠르게 지나치는 빌딩들, 이 너머에는 맷의 사무실이 있었다.
내일이 없을 수도 있구나.
겁이 많은 피터는 문뜩 그런 생각을 시작한다. 뉴욕의 많고 많은 빌딩들, 수많은 사람들, 제 붉은 코스튬은 그곳에 섞이지 못했다. 피터는 빌딩 위를 겉돌며 내일 없는 삶을 고민했다. 상처 받을 이들에게 사과를 해야하는데, 그것도 할 수가 없구나. 어제 다친 상처가 쓰라려서 잠시 표정을 찡그리지만 마스크는 렌즈만 조금 일그러질 뿐 보여지지 않아서, 핏물은 붉은 천쪼가리에 흡수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해진다. 내일이 없으면. 사과를 잔뜩 해야하는데, 생각하다가 문뜩 다시 맷을 떠올렸다. 내가 없으면 맷에게 맛집을 추천하고, 같이 순찰을 돌아줄 친절한 이웃이 없어지는 거잖아. 스파이더맨은 뉴욕의 이웃이지만, 피터 파커는 맷의 이웃인 걸. 피터는 빌딩 벽을 저벅저벅 걸어다니며 고민했다.
뉴욕 겁쟁이들 모임이라도 만드는 게 좋을지 몰라.
친절한 이웃들이 서로를 보살필 수 있잖아.
그런 바보 같은 생각들로 피터는 제 두려움을 날려버렸다. 제일 무서운 순간에 두 발이 멈춰버리면 안 되니까. 피터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맷도 마찬가지여서 이 관계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공짜 핫도그, 반짝이는 뉴욕, 두근거리는 심장, 바보 같은 농담.
피터는 영원한 순간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순간이 계속되길 바라고 만다.
맷, 맷은 어때요?
저 오늘 좀 멋지지 않아요?
내뱉지 못한 말을 꾸욱 눌러두며 피터는 장난스러운 농담을 했다. 그러면 맷은 잠깐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곧 한숨 쉬듯 웃으며 섬유 유연제 향이 바뀌었냐는 식으로 받아쳐주었다. 늘 세일하는 것으로 사고 있는 탓에 정말인가 싶어 킁킁거리며 코스튬 냄새를 맡고 있으면 맷은 다시 웃었다. 그런 농담 주고받기에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범죄자들을 혼내줄까에 대한 고민이 얹어진다.
내일이 있어서 다행이야. 적어도 내일은 말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내일이 없어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사실 알면서도 모른 체 했던 것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피터는 천천히 눈을 끔뻑였다. 땀인지 피인지 모를 것으로 축축하게 젖은 마스크가 뺨을 찰싹 눌러오고,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두 다리가 바들거리며 주저앉고 싶다 비명을 질렀다. 아, 이 안에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아야할 텐데. 피터는 그 순간에도 빌딩 안에 다른 사람이 있을까 걱정했다. 맷처럼 감각이 좋으면 냉큼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그걸 모르는 스파이더맨은 무너지는 건물 사이사이를 오가야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폭발로 축이 무너진 건물은 지금도 천천히 내려앉는 중이다. 젖은 슈트에 부서지는 건물 잔해에서 발생한 먼지들이 붙었다. 예전이었으면 무서워서 울었을 겁쟁이 피터는 작은 숨을 내쉬고 몸을 움직이려 애쓴다. 땅을 보지 말고 위를 보자. 부들거리는 두 다리가 위로 더욱 얹어지는 무게에 결국 주저앉는다.
감각이 둔해진 몸, 아프게 울리는 스파이더센스, 축축하게 젖은 슈트.
무너지는 빌딩 안에 나만 있어서 다행이라는 편한 생각을 하다가, 흐릿해지는 시야로 문뜩 맷을 떠올렸다. 내일이 없는데. 이제는 맷에게 맛집 추천이나 해주며 그렇게 웃어넘겨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뜩 슬퍼지다가,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피터는 생각했다. 그랬으면 너무 슬퍼졌을 게 분명하니까. 우리 둘다 겁쟁이라 참 다행이에요.
그래도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이야기할 걸 그랬나. 아냐, 안해서 다행이지. 제 생각들을 반박하고 반박하며 피터는 제 위에 얹어지는 세상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래도, 말하는 게 좋았을까.
I Loved You, Matty.
피터의 생각은 그렇게 그곳에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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